예배에 참석 할 수 있는 권리
고린도전서 11: 8-16절
2020년 2월 9일 주일 낮 예배
No. 455
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아멘
● 천국을 맛보는 것은 자유 함이요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이런 삶이 거듭난 자의 삶이다. 세례를 받은 자는 거듭난 자의 표징이다. 하나님은 창조한 자이고, 우리의 아버지 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종 노릇 한다. 예배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굴복이 있는데 천사들도 참여한다.
저는 참 유럽의 영국 이런 데가 부러운 것이 우리나라보다 잘 살기 때문에 부러운 것이 아니고요, 우리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는 손흥민이가 그 곳에서 축구 선수로 정말 이름을 날리고 잘 뛰는데 어떤 한 축구 펜이 손흥민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어요 응원을 하면서, 그런데 영국에서는 그 사람을 영구히 축구장 출입금지를 시켰어요. 이런 것이 너무나 부러워요. 거기는 기독교 국가잖아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 거듭난 사람의 구분을 그저 단순히 교회에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 이런 것으로 가리는 것은 너무 유교적인 영향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요. 우리 영어에도 보면은 중학교 1학년도 아는 영어, go to the church, go to church, 구분하잖아요.
1. 예수님 때문에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보며 사는 신앙 생활 되어야 된다. 그리스도 속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님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그런 구분이 없어요. 예배를 보러 오는 사람,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 이런 차이는 분명히 우리 가운데 있겠지요. 저는 정말 불쌍한 사람은 살아 있을 때에 교인으로서 신앙 생활 열심히 하다가 지옥 가는 사람, 제일 불쌍한 사람이지요. 또 교회에 다니면서 종교적인 짐만 지고 살아가는 사람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맛이라도 보며 사는 신앙 생활 되어야 되요. 천국의 삶을 맛보는 삶은 기도 응답을 해서 기도할 때마다 자녀가 잘 되고, 부자가 되는 것 이런 것 아니에요. 천국을 맛보는 것은 자유 함이에요. 우리는 경제적인 문제 여러 가지 문제에서 많은 매임의 삶을 살잖아요. 거기에서 자유 함을 누리는 거에요, 그리고 평안을 누리는 거에요. 이런 삶이 거듭난 자의 삶인데, 이런 삶을 살지도 못하고, 종교적인 짐만 지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지요.
왜 그런가, 성경의 해석을 잘못해서 그래요. 열심히 믿는 사람 보면은 성경대로 믿는다고 하는데 잘못된 열심히 너무나 많이 있거든요. 또 너무 유교적인 영향으로 외형적인 것을 가지고 따져서 그래요. 정말 여러분 오늘부터 저 사람이 정말 거듭났느냐 안 났느냐는 무엇으로 가지고 판단해야 되는가 하면은 사람을 차별하는가 안 하는가 이런 것을 가지고 구분해야 되요. 저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 인가, 아직까지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인가, 이런 것은 사람을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 못 해주는 사람, 이런 것으로 차별을 한다든지 사람의 외형을 가지고 차별을 할 때에 우리는 신앙이 어리구나 이렇게 봐야 되요.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세례를 받은 자는 세례는 거듭난 자의 표징으로 주는 거지요. 그리스도 속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님 안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옷 입는다는 것은 신분에 걸 맞는 행동을 해라 이런 말인데, 그 다음에 29절에 보면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1세기에 모든 사람들이 사람을 구분할 때에 유대인인가, 이방인인가, 이런 구분을 했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래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 다음에 남자나 여자의 차별이 심했어요. 여자에 대한 차별은 동서고금[東西古今]언제나 존재하는 거지요.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그리고 사회적인 신분의 차이, 우리나라는 그 사람이 뭐하느냐 이런 게 중요하지만은 그때에는 이 사람이 자유인인가, 시티즌[Citizen]인가, 아니면 노예인가, 그래서 자유인이나 노예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이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 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이 거듭난 사람, 천국에 갈 사람이라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노예냐 이런 것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다 이랬다고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에는 보면은 오히려 잘못된 기독교가 이런 인권에 대한 바른 것이 없으니까 잘못된 인권 운동이 일어나요.
2. 모든 것을 가치 판단할 때에 창세기 신학으로 해야 된다. 거듭나면은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로 본다, 이 가치 변화가 있어야 된다.
이 부분은 제가 또 계속해서 설교를 할 거에요. 교회에 남녀의 차별이 참 많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된 인간의 역사, 동서고금 어디에나 남녀의 차별이 있는 그런 것이었어요.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서 예수님이 오셔서 남녀의 차별이 없게 만들었는데 고린도 교회는 특수한 상황에서 자유를 얻은 여자들이 그 자유를 오용했다고 그러지요, 그래서 그것을 오늘 교정하는 말씀으로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말씀을 하는데, 여러분 이 말씀이 이런 정황 속에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알지 못하면은 마치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거와 같이 보여요. 그래서 8절에 보면은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 이것도 창세기 2장 22절에 의거한 말씀이에요.
창세기 2장 20절에는 하나님이 남자를 창조하고,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다 이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가 역사라고 이야기 했잖아요. 모든 것을 가치 판단할 때에 창세기 신학으로 해야 되요. 그래서 여자들이 교회에서 자유를 오용하는 그들에게 교정을 하면서도 창세기 신학을 가지고 먼저 이야기를 주지[周知]시키는 거에요. 여자들이 남자에게서 낳다, 그러면서 9절에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니. 이것은 창세기 2장 20절에 의거한 말씀이에요. 여자를 만들 때에 뭐라는가 하면은 남자의 돕는 배필로 만들었다 이래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만 보면은 여자들은 남자들의 돕는 역할 정도 하는 그런 사람으로 비추이기 쉬워요. 이런 것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요. 타락한 세상의 가치로 보는 것이라고요. 거듭나면은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로 봐요. 여러분들에게 이 가치 변화가 있어야 되요. 그래서 교회에도 보면은 거듭난 자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로 가지고 판단하지 아니하니까 마치 뭔가 남에게 스포트 하는 일은 써브하는 일은 하찮게 여긴다고요. 그래서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고, 대접 받으려고 한다고요. 거듭나게 되면은 그 가치가 완전히 변화 되어져요. 교회가 참 평안이 없는 것,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고도 자유를 못 누리는 것은 거듭난 자의 가치 판단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대접 안 받는다고, 자기는 가난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고 이래 버린다고요, 그래 되면은 또 다른 억압과 굴종이 일어나는 일밖에 더 있어요 기득권에 변화만.
거듭나면은 제가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부모는 낳은 자고 큰 자이기에 평생 자녀에게 종 노릇 한다고요. 하나님은 창조한 자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이기 때문에 평생 사람들에게 종 노릇 해요. 그래서 천국은 천국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 교회는 그래야 되는 거에요. 장로나 권사나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고, 교인들에게 종 노릇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요. 그래서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11절에 이렇게 교정을 해 준다고요.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이렇게 교정을 해 준다고요.
3. 고린도전서 1장에서부터 14장에는 예배에 관한 말씀이다. 11장부터 14장까지는 진정한 예배 자가 되는 변화가 일어나야 된다. 그러면 가난해도 문제가 안 되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그것이 나를 얽어 매지를 못한다.
이런대도 한국 교회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강해요. 왜 그런가 하면은 유교적 영향 때문이에요. 그래서 10절의 말씀도 오역[誤譯]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10절은 굉장히 번역이 어려운 말이에요. 여러분 성경에 구약은 히브리어로 되어 있고, 신약은 헬라어로 되어 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번역 성경이에요. 그래서 번역을 했는데 10절에는 의역[意譯]을 했어요. 우리 한국 성경은. 왜 의역을 했는가, 유교의 가치관이 한국 교회에도 만연했기 때문이에요. 유교의 가치관은 남녀 칠세 부 동석이에요. 여자는 사람으로 취급 받지 못하고 무시 당하는 것이 유교의 가치관이에요.
그래서 교회에도 보면은 이런 부분은 또 제가 언제 한번 설교해 드릴 거에요. 여자는 목사도 못되고, 장로도 못 되고, 여자는 그저 권사로서 부엌 때기나 해야 되고, 이런 부분도 인권 신장을 잘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은 거에요. 그래 최근에 와서 여자에게도 안수 주고, 이러는 것들도 참 성경을 제대로 알고 해야 되요. 그러면 이 10절의 말씀이 어떻게 오역이 되어졌는가, 원래 정역은요 바른 번역은 여자들이 천사들 때문에 권리를 가졌다 이런 말인데요, 우리나라 말에는 여자들이 천사들 때문에 여기에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요. 왜 이런 번역을 했는가, 또 이 번역이 이 말씀이 왜 어려운가, 천사들 때문에 여자들이 왜 권세를 가졌다 권리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요.
여기에 여자들이라는 것은 그 동안에 해석을 어떻게 했는가 하면은 이렇게 해석을 했었다고요. 천사들 때문에 라고 할 때에도 여러분들이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부터 14장에는 예배에 관한 말씀이라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참 예수를 믿고, 나는 나를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참된 예배 자가 안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교회가 평안이 없는 것은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된 예배 자가 안 했기 때문이에요. 교회가 잘못된 게 아니고요. 여러분들이 자유 함이 없는 것, 남을 미워한다든지 내가 가난하다든지 내 환경이 내가 얽어 매임을 당하는 것은 잘 기억하세요, 내가 부자가 안 되어서, 사업이 안 되어서, 직장 생활에서 진급이 안 되어서가 아니에요. 예배 자가 안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교회에는 와 가지고 자꾸만 높은 것 된다고 이야기한다고, 잘못된 복음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고린도전서 11장부터 14장까지는 진정한 예배 자가 되는 변화가 일어나야 되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가난해도 문제가 안 되고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그것이 나를 얽어 매지를 못해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 우리 교회가 이번에도 누가 뭐 그래 놨더라고, 목사님 아파트에 임대가 밀려 가지고 100만원 좀 주었으면 하더라고, 그런데 여러분 이것도 언제 한번 이야기 하겠지만은 우리 교회가 그것 줄 여력이 안 되요. 그러나 제가 20만원 정도 드렸다고, 다 책임지는 것 아니라고 했잖아요. 능력만큼 해 주어야 된다고.
그런데 우리가 그런 것 책임지는 교회가 되려면은 여러분들 각자가 예배 자가 되면은요 지금 숫자에도 얼마든지 책임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예배 자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예배 자는 뭔가, 참된 예배는요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나와요. 거기에 보면은 하나님의 의자가 있고 어린양이 있고, 네 생물이 있고, 24장로가 있고,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송가 영광을 돌려요. 이것은 실제 하는 거에요. 그 요한계시록의 예배의 재현이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가 되어야 되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이단에 넘어가고, 세속화된 초대 교회에 그 예배를 통해서 천상의 예배를 보여 줌으로 말미암아 참된 예배 자가 되기 위해서 이단에도 넘어가지 않고, 세속화도 되지 않고, 천국의 그 평안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이거든요.
4. 하나님께서는 이 예배에 임재 해 계신다. 설교는 성경의 올바른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 주어야 된다. 창세기 6장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사랑해서 결혼을 해서 네피림 이라고 하는 고대의 명성이 있는 자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도 우리 한국에는 이단이나 잘못된 데에는 맨날 입에 발린 게 천사는 성령이나 귀신이나 이런 이야기 하고, 정통적인 교회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합리적인 이야기만 하니까 교회가 자꾸 세속화된다고, 세상에 매이게 된다고요. 여러분 교회는 영적인 것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이 예배에 임재 해 계세요. 여러분들이 왜 한국 교회가 그렇게 되었는가, 80년대부터 실용주의가 한국 교회에 장악[掌握]을 하면서 예배를 목사님 설교 들으러 오는 거에요. 얼마나 웃겨요. 그래서 목사님이 코미디 같이 설교 재미있게 하면은 사람들 모이고, 또 목사님이 유익한 말씀을 하면 모이고, 유익한 게 아니에요.
성경의 올바른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해 주어야 되는 거에요. 예전에는 한국 교회가 예배를 드릴 때에요 하나님 만나러 왔어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만해도 새 옷 사 입기가 쉽지 안 했어요. 일년에 한두 차례 아버지가 새 옷을 사 놓으면은요 사서 지금과 같이 안 입혔어요. 사서 와 가지고 딱 집에 놔 두어요. 언제 입는가, 먼저 예배 드리고, 예배 드릴 때 입고 가서 갔다 와서, 그 다음에 입게 했어요. 왜 하나님 전에 아름다운 것을 드리려고, 여러분들에게 그런 마음 있어요, 지금 다 없어져 버렸잖아요. 그저 올 때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없잖아요. 예배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어야 되요. 왜 그런가, 성경 해석이 너무 세속의 가치관으로 해석이 되어져 버린 거에요.
저 그럴 때 여기에 오늘 우리 이 성경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천사들이 이것은 여러분 유대교의 해석과 그것이 기독교에 들어왔는데,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예배 때에 천사들이 와서 감독을 한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 성경을 그대로 믿었든 사람들이 누가 진짜 예배를 잘 드리는가 안 드리는가 천사들이 감독한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여기에 천사들 때문에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에 둘지니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여자들이 수건을 쓰라는 말이 거든요, 얼굴을 가리라는 말이거든요, 이것은 제가 지난주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대로 원래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여자들이 수건을 쓰는 것을 다 벗겨 버렸는데, 고린도교회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수건을 쓰게 했다 라고 말씀을 드렸지요.
권세 아래 남편의 권세 아래 있는 표시로 수건을 써라 이런다고요. 그래서 요즘도 보수 보수가 아니에요, 수구에요 그런 교회는.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해, 어떻게 여자가 안수를 받아, 여자들이 교회에서 무슨 소리를 하면은 시끄러워, 왜 교회에서 시끄럽게 해, 여자들이 문제야, 이렇게 해 버린다고요. 여러분 이 말씀은 왜 그런 것들로 우리나라가 의역이 되었는가 하면은 창세기 6장에 말씀을 가지고 지금 이것을 해석을 하는 거에요. 창세기 6장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사랑해서 결혼을 해서 네피림 이라고 하는 고대의 명성이 있는 자가 나왔다고 그러면서 사람이 그래서 하나님의 신이 그들과 함께 아니함으로 육체가 되었다 라고 하면서 120년 요것은 다 다음 주쯤 제가 설교할 거에요.
5. 여자들을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다 유교의 영향으로. 그러면서 남성 우월주의[優越主義] 문화에 대한 정당성을 가져간 것이다.
우리 주일학교 졸업식 하고 삼일절에 연 이주에 걸쳐서 창조에 대해서 설교를 제가 다시 한번 할거에요. 그때 자세히 말씀 드리겠지만 오늘 예배로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면은 예배 때에는 천사들이 이곳에 와서 예배 드리는 사람들을 관리 감독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여자들이 수건을 벗어 버리면은 여자들이 창세기 6장과 같이 천사들을 유혹하는 것이 되어 가지고 이상한 괴물이 나온다는 거에요. 이런 말씀을 유교적인 가치를 가지고 뭐라 하는가 하면은 교회에서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꾸미게 하면은 남자들을 유혹해 가지고 이런 일들이 일어나서 교회가 엉망진창 된다. 그래서 화장도 하지 말고, 심지어 초대 교회에는 파마하는 것도 죄라고 하고 이랬다고. 전부 유교의 영향으로.
이 말씀 속에서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은 여자들을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로 전락시켜 버린 거에요. 그러면서 남성 우월주의[優越主義] 문화에 대한 정당성을 가져간 거에요. 오늘 그래서 한국 교회가 여권이 사회보다도 더 무시된 한국 교회가 되어 버린 거에요. 이 말씀을 유교적으로 해석해서 그래요. 그러면 이 말씀은 뭐냐 하면은 천사들 때문에 여자들이 권세를 가진다고 할 때 이 권세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된다 이런 말이에요. 이 말씀은 무슨 의미냐 하면은 이런 의미에요. 모든 예배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굴복이 있는데 천사들도 그 예배에 참여하고 24장로는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 상징하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될 때에 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는가, 제가 지난 주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대로 자랑하지 않는 사람, 고린도교회에 여자들이 남편 자랑, 자식 자랑이 많았는데 그런 자랑을 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는 겁니다. 그것은 너희들이 이전의 세속에 있을 때에 가치관을 가지고 종교 생활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여자들이 권세를 가지는 거에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격과 특권은 자랑하지 않는다. 여러분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은 여자들이 유혹하는 존재 여자들 뭐 창세기 2장에 아담을 유혹해서 우리가 이 고생했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요, 남자나 여자나 누가 예배를 드리는 자격을 가지는가, 아무나 예배 드리는 게 아니에요.
성찬식에도 말씀을 드렸지만은 예배에 아무나 올 수 있지만요 진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은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성찬식에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성찬을 받지 못하고 죄와 더불어 먹는 것이라고 그랬어요 그것 먹으면은. 오늘도 여러분 14장까지 예배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 진짜 이제는 예배 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구원이 여러분들의 삶의축복이 되고, 그래서 우리 교회가 정말 평안이 넘치는 그런 교회가 되어져야 되요. 예배 자의 자격이 뭔가, 제가 이야기 했잖아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예배 자가 되는 거에요. 하나님과의 만남은 종교적인 현상 엑스타시 현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게 되면은 세상의 것이 시시하게 보여져요. 그래서 자랑하게 안 되요.
6. 십자가에 계시된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은 세상의 것이 시시하게 여겨 진다. 부자 되는 게 그렇게 크게 내 소망이 안 된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남편 자랑, 자식 자랑, 무슨 자랑을 하면은 부끄러워야 되는 거에요. 저 사람은 아직까지 거듭나지 못하였거나 어리구나, 우리 한국 교회는 예배를 복의 통로라 가르친다고, 성경 어디에 있어요. 복을 받는 수단으로 예배를 하게 될 때에 거기에 깊은 전제의 성도가 뭐냐 하면은 남보다 잘 되어서 예수 믿어 가지고 자기의 존재 가치를 더 올려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기를 들어내려고 하는 속마음이 있잖아요. 얼마나 세속적인지 몰라요. 진짜 하나님 만나게 되면은 이전에 그렇게 좋든 것이 별 것 아니게 여겨 지는 거에요. 또 강조하지만 여러분 보세요, 어릴 때 사춘기 때는 나는 아버지같이 안 살아, 스마트폰 하나도 못 바꿔 주는 저런 아버지가 뭐 자랑스러움이에요.
철들고 진짜 부모를 알게 되면은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 어디 있나, 하나님 제대로 안 만나면은 하나님이 되어 가지고 내 이런 것도 못해 줘, 거듭나지 안 했거나, 유아틱한 생각이에요. 십자가에 계시된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은 세상의 것이 시시하게 여겨져요. 부자 되는 게 그렇게 크게 내 소망이 안 되요. 목사들은 교회 성장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교회 와 가지고 부자 되려고, 높아 지려고, 여러분 자녀 잘 되려고, 그저 열심히 하고 이러거든 불쌍하게 생각해요. 종교 생활은 열심히 하고,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옛날에는 그랬어요 한국 교회가, 나 혼자 이러니까 문제가 되는 거에요.
옛날 교회는 전부 그랬어요. 부자 되려고 교회 나온 게 아니에요. 제대로 된 인간이 되려고, 그래서 타락 이전 에덴 동산에 들어가려고, 여러분 이 변화가 우리 속에 있어야 되요. 초대 한국 교교회 장로 권사 다른 교회 가면 별도로 있는 것 그런 게 무슨 교회에요 유교지, 교회 수석 장로 뭐 이런 장로가 어디 있어요, 장로는 다 장로고, 목사는 다 목사지요, 장로나 권사나 목사는 기능직이에요 기능직, 천국은 성도로서 가는 거에요, 예배 자로서 들어가는 거에요. 이것 분명히 하고 여러분들이 믿어야 되요. 안 그러면은 열심히 믿고, 천국에서 못 만날 수도 있다고요. 다 다음주 또 천국에 확실히 있는 것을 설교 하겠지만, 심각한 문제요 우리 한국 교회에. 언제 여러분들에게 한번 제가 설교 했잖아요.
7, 김제 금산 교회의 이자익 목사와 조덕삼 장로의 이야기
김제에 금산 교회 우리 한국 교회가 유교 남녀 칠세 부동 석이기 때문에 초창기의 예배는 기억 자 형태였어요. 남자가 들어오는 출입문, 여자가 들어오는 출입문 달랐고요, 목사님만 남자와 여자를 다 볼 수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만해도 직 사각형 예배당에 중간에요 커튼을 쳐 가지고 남 반, 여 반, 구분했어요. 그것 걷는데 1세기 걸렸어요. 금산 교회에 어떤 유명한 이야기인가, 우리 한국에 조세형 의원 알지요 10대 12대 13대 14대 15대 국회 의원을 지내고 국회 부회장까지 했을 거에요. 그분의 할아버지가 금산 교회를 지은 거에요. 자기 과수원 밭 터에, 그 금산 교회에 그 할아버지가 조덕삼이라고 김제에서는 부농이에요.
남해에 너무 가난해서 못살다가 흘러서 흘러서 남해에서 김제로 와 가지고, 조덕삼씨 그 집에 꼴머슴으로 들어간 사람이 이자익 이라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조덕삼과 이자익이가 같이 선교사에게 복음을 듣고 교회에 다녔어요. 같이 집사 되고, 영수 옛날에 영수라는 게 있었어요, 영수되고, 장로를 투표했는데, 조덕삼이가 떨어지고, 이자익이가 된 거에요. 저는 그때가 한국 교회가 살아 있다는 거에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머슴이나 여러분 지주의 그 계층이 얼마나 두꺼웠어요. 저는 지금도 기억해요. 제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인가 동래에서 뭐라 했는가 하면은 어른이 저보고 다런 어른을 가르기면서 저 녀석은 백정이니까 말 높이면 안 돼, 이러는 생각이 지금도 내 어릴 때에 얼마나 뇌리에 박혔으면 그 생각이 내 머리 속에 있었겠어요.
그런 시대에 지주 주인은 장로 떨어지고, 머슴이 장로가 되는 것이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저는 그런 교인은 살아 있는 교인이라 봐요. 여러분들이 제대로 가치 평가 하고 예배 자로서 살아야 되요. 그런데 조덕삼 장로 그 뒤에 장로가 되었는데요, 자기 집에 꼴 머슴인데, 교회 오면은 장로님 하고 섬겼어요. 그 사람이 못나서 그런 겁니까, 거듭난 자의 표시에요. 나중에 그 이자익을 신학교 보내 가지고 목사 만들어서 훌륭한 목회자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전 신학 대학이 그 이자익 목사가 출신인데 그 목사님의 기념관을 만들 때 조덕삼 장로 손자의 조세형 장로, 이자익 목사의 손자 이규완 장로가 같이 참석한 거에요. 이규완 장로는 고분자화학 학자로서 유명한 학자가 된 거에요. 이규완 장로가 조세형 장로에게 고개를 굽신 하면서 이렇게 인사 했대요.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참 잘 만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못 만났으면 우리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도 안 계셨을 것입니다, 복음이 뭔지 알아야 되요.
예수를 제대로 만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계시된 예수를 만나면은 이전에 그렇게 좋든 것이 값없이 되요.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행복이 별로 의미가 없게 되어져요. 이런 사람을 누가 불행하게 하겠어요. 이런 사람이 무엇에 매이며 살겠어요. 이런 사람들이 있을 때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거지요. 우리 교회 여러분 적은 숫자 아니에요. 그분은 우리 교회 온지 얼마 안 되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교회 다니다가 왔어요. 그런대도 어려우니까 전도사를 통해서 나한테 소식이 왔을 때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지요. 뻔뻔스럽다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못하게 해서 상대방에게 나쁜 것을 들추어 내는 것이 인간의 죄성의 모습이에요. 또 하나는 그 문제를 해결 해 줌으로 내 의를 드러내려고 하다 보면은 여러분들에게 짐이 되는 거지요.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그럴 때에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8.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기다가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 당했다. 강단에서 하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 여러분들이 예배 자가 되는 거에요, 그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평안이 힘이 있어야지요. 왜 우리 교회가 이렇게 모이면서도 그 힘이 없는가, 예배 자가 안 많기 때문이에요. 예배 자가 안 많다는 이야기는 교회에서는 만나도 나중에 못 만날 수 있는 거에요. 농담으로 여기지 마세요.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기다가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 당했어요. 강단에서 하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Go to the church 이제는 Go to church 로 바꾸세요. 그래야 여러분들에게 자유 함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평화가 넘쳐요. 참된 예배 자는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안 해요. 나도 육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나에게 좋은 말 하는 사람 좋고, 싫은 말 하는 사람 싫은 것은 내 육신의 죄성의 본성이에요. 영으로 그것을 이겨야 되요.
나도 훌륭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훌륭하게 보이는 육이 내 속에 있어요. 교회에서 젊고 유능한 사람 죽으면 아까운 것 같고, 연세 드신 사람 죽으면 호상이라고요, 자식은 그래 생각 안 해요. 쉼이 있는 잔치 수료 다 하셨지요, 이 변화 없이 수료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저는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 되었으면 해요. 머슴이 주인을 제치고 장로가 될 수 있는 교회, 그랬을지라도 주인이 그 머슴을 장로로 깍듯이 섬길 수 있는 이러한 교회, 80년대 이후에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 목사 설교 들으러 와요 하나님 만나러 안 오고, 여러분들이 하나님 만남으로 말미암아 이전에 그렇게도 귀하게 여기든 것,
부귀와 명예와 행복이 예수보다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게 되어져서 세상이 여러분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그래서 세상은 인종적 차별, 남녀의 차별, 사회적 신분의 차별로 인하여 수많은 갈등과 고통이 있는 세상이지만은 여러분들이 그래도 주일날 교회 옴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대접을 받는 교회, 그런 교회를 위해서 14년 동안 눈물 흘리면서 가는 거에요. 아멘
◈봉헌 기도◈
세상에 지식이 있고, 가문 좋고 능력 있는 사람 많은데, 보잘것없는 우리들을 선택해서 세상의 구원의 도구로 삼아 주시고, 회장이 결심 한번 하면은 5만 명에게 장학금 줄 수 있는 주식회사도 있는데, 수백 명이 모여서 가난한 사람 하나 구하기도 힘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구원의 방주라 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보는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몸 버려 세우신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김종웅 목사와 서울 교인들이 개척한 그것이 교회의 설립이 아니오,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세워 진 구원사의 교회가 우리 교회의 뿌리가 되어져서 목사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장로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력만이 있는 살아 있는 요한계시록 4장 5장에 있는 천상의 예배가 주일마다 드려져서 세상에 많은 것에서 얽매어서 감사 하지도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세상에 많은 종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되게 하시고, 오늘 드린 예물을 주님이 열납 해 주셔서,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운데 나누어 줄지언정 꾸는 자 하나도 없도록 이 사회가 좀 더 공의로워 지고 개인에게 성실한 마음 허락해 주시고,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들로 충만하게 되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예배 때 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예배 자가 되도록 십자가에 피 흘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 보다 세상의 행복 명예 권세 부귀영화 가치가 상대화 되어져서 그 무엇으로도 자신을 얽어 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그리스도 된 자들과 이들이 모여서 천상의 그 예배가 주일마다 실현되기를 원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위에 재림과 함께 완성될 그 나라가 임하기까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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