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강단>
하나님을 본 사람 (창32:24-28)
‘이스라엘’이란 말은 “이쉬(사람)+라흐(보다)+엘(하나님)”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였던 야곱은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사람이 되었다.’입니다. (창32:28)
첫째.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⑴인간은 하나님을 매우 보고 싶어 합니다. 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원 성취를 위해서 입니다. 목적이 무엇이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절대자의 도움이 필요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봅니다. 자기의 병과 죽음을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려는 것입니다.
⑵세상에는 보이는 거짓 하나님도 있습니다. 부처가 눈앞에 앉아있습니다. 무당은 신의 음성을 직접 들려주기도 합니다. 이단들은 신기한 해석과 신비한 체험을 줍니다.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신을 보이는 모습으로 경험되는 대상으로 갖기 원했습니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보는 비결이 있습니다.
⑴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해야 하나님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눈앞에 가로 막힌 더러운 것을 제거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⑵무엇이 가로 막았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죄와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으로 채워지면 하나님은 거기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죄를 그대로 두고서는 육신의 생각에 사로 잡혀 있으면 하나님은 계셔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누리는 길이 있습니다.
⑴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아야합니다. 아기 참새가 엄마 참새에게 물었습니다. "왜 인간들은 저렇게 불안 해 하며 걱정일까요?" 엄마 참새의 대답입니다. "그건 너와 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이 저들에게는 없기 때문일 거야!"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날 예배드리고 갑니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종교 란에 써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혼자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⑵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엘리아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폭풍 속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사태가 나서 산이 갈라질 때 용암이 솟구치고 지구의 속까지 터져 나올 때도 지진으로 온 천지가 흔들려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모든 것이 끝나고 고요했습니다. 그때 들릴락 말락 아주 작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었습니다.
결론: 야곱처럼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사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2012, 8. 26. (주일) 청주소명교회 진범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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