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강단

앞만 보고 달려 가야합니다. (히10:35-39)

차주희 2014. 8. 14. 13:19

 

 

 

 

<소명의 강단>

 

앞만 보고 달려 가야합니다. (히10:35-39)

 

 개인도 단체도 국가 공동체의 흥망과 성패도 어디를 보고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독교는 앞을 바라보고 위를 바라보는 선명하고 분명한 미래 관을 가진 종교입니다.“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뒤로 물러가면 침륜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푯대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첫째,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35절) 여기서 '담대함' 이란 (헬/파르레시아) 확신, 자신감, 기탄없이, 담력과 같이 쓰였습니다. 확신이 있으면 용기와 담대함이 따라 옵니다. 사도들과 순교하기까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간 성도들의 담대함은 확신에서 온 것입니다. 성서학자 '델리취'는 방패를 버린 병사는 이미 병사가 아닌 것처럼 확신을 버린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확신 없는 그리스도인은 담대하게 전진하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확신, 보혜사 성령의 함께 하심과, 하나님나라 소망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확신 있으면 담대합니다.

 

  둘째,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36절) 고 하였습니다. '인내' (헬/휘포모네)란 '병사들이 행군하다가 길이 막히면 되돌아가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계속 전진하는 자세로 걷는다.' 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인내는 절대로 필요합니다. 구원을 받았더라도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기도도 인내해야 응답 받고, 축복도 인내하고 기다려야 받을 수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참아야합니다.“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주여! 인내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셋째, 뒤로 후퇴하지 말아야 합니다.

 “뒤로 물러서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38절) 고 했습니다. '뒤로 물러선다.' 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과,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①잘 웃지 않습니다. ②칭찬하지 않습니다. ③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절망을 이야기하고 어둔 것을 말합니다. 비판하고 비난하기를 힘쓰고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작전상 후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앞을 바라보는 사람, 위를 바라보는 사람, 뒤로 물러서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 론의 저자 스위스의 철학자 '칼 힐티'(Carl Hilty)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언제나 앞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뒤로 물러서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결론: 왜 우리가 앞을 바라보고 살아야합니까? 주님이 앞서 가셨기 때문이며, 우리의 목표가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뒤로 가는 것보다 앞으로 가는 것이 쉽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습니다. 염려하지 맙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용기를 잃지 맙시다. 뒤로 물러서지 맙시다. 아멘

 

(2014년 8월 17일(주일) 청주소명교회 진범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