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초안 요약문(구역공과)

천국은 어떠허게 오는가? (4)

차주희 2015. 12. 13. 01:01

15. 12-13 (천국 4)

 

천국은 어떻게 오는가 (4)

9:1-8 (2:13-17)                                                                 351

 

 

11: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자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었고, 9:5절에는 예수님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선언에 중풍병자가 치유되었다. 즉 예수님께서 사탄을 쫓아내고 죄를 사함으로 병이 치유되었다.

이러한 본문에 의거해서 사탄을 쫓아내고, 죄사함을 받게 해서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독일로 간 종교인이 축사(逐祀)를 통하여 병을 고치려다가 사람을 죽인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이런 불상사가 발생케 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신학적 입장이 중요하다. 본문이 말씀하는 것은 올바른 신학적인 입장은 무엇인가?

 

첫째 사탄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탄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사탄이 인간에게 직접 역사해서 병을 일으키고, 고난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죄와 고난을 1:1의 관계로 해석하거나, 고난과 사탄과의 관계를 1:1의 관계로만 생각하는 것은, 2×2=4이고, 2+2+4이기 때문에, ×와 +는 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같이 생각하는 것은 수학을 모르는 사람의 주장이듯이, 사탄을 쫓아내고 죄를 사하면 병이 치유된다고 하는 것은 신학에 전혀 문외한 사람의 주장이다. (이우석의 예) 이러한 생각은 열난다고 해열제 먹이고, 설사한다고 지사제 먹이는 것과 같고, 어떤 병이 든 사람에게 어떻게 했더니 병이 나았다고 하는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

요일 3:6절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라고 하고, 4:7절에도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한다.

성경은 분명히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나, 인간에게 직접적인 고난과 고통을 가져다준다고 하지 않는다.

 

둘째 사탄은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고, 자신의 일을 한 인간에게 그 값으로 지불한 것이 사망이다.

 

6:23절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하고, 요일 3:6절에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하신다. 즉 사탄은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는데, 사탄이 인간에게 짓게 하는 죄는 인간이 만든 사회적 윤리나 종교적인 규범을 어기는 정도의 죄가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라고 것이다.

사탄의 역사는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병고를 주고,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게 함으로 인간에게 죽음(고난은 죽음의 증상)이 임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탄은 인간에게 죄를(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 짓게 하고, 자신의 일 즉 죄를 지은 인간에게 사망으로 그 값을 지불한다. 한마디로 죄의 대가는 사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망은 육신적인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존재로부터 분리를 의미한다. 즉 인간이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1차적 사망이고,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자원만으로 살다가 생물학적으로 죽는 것이 2차 죽음이고, 죽음 이후에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 3차적 죽음이다.

현재적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됨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자원에 의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줄기에서 잘린 꽃과 같은 것이다. 꽃이 줄기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점점 말라지듯이 하나님과 분리된 우리의 인생도 사망의 권세 아래(인간 자신의 내재적 자원으로 살려고 하는 삶) 있기 때문에 수많은 죽음의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고난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간적인 처방도 임시적이고 제한적이다. 의사의 처방으로 병을 치유해도 또 병이 들고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고, 인간의 어떠한 자기만족도 일시적인 것이고, (다솜이 희망) 인간 사회의 어떠한 문제의 해결도 그 처방으로 인하여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군부 종식, 금융 실명제, 노사간 대 타협...)

그러므로 교회는 그러한 인간의 임시적 처방에 동조하지 말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예수님의 축사와 죄사함으로 인한 치유의 신학적 의미

 

6:23절에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한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리스도적 사역 즉 성육신, 십자가, 부활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은 생물학적 삶이 영원하다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존재와 연합된 삶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사망과 같이 영생도 예수를 믿음으로 영원한 존재인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이 1차적 영생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연합됨으로 인간의 부족한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으며 사는 삶이 2차적 영생이다. 그리고 죽어서 하나님과 온전히 함께 하는 삶이 3차적 영생이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생명을 주신 것에 대한 표적으로 사탄을 쫓아내고 죄를 사함으로 병을 고치신 것이다. 지난주에 예수님의 축사와 치유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시위라고 한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사탄을 제압하시는데, 십자가에서 사탄의 등뼈를 부러뜨렸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 사탄의 숨통을 끊어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때는 더 이상 사탄에 의한 죽음이 없고, 인간의 모든 고난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탄의 허리를 부러뜨린 이 시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힘을 의지해서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사탄에 대항하는 것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려고 하는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인간의 모든 고난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님의 축사와 죄사함으로 인한 치유는 이런 영적인 싸움에서 사탄을 제압한 예수님의 승리인 것이다. 이러한 신학을 알면 더 이상 축사와 죄사함으로 인하여 병을 고치려고 하는 목회를 하지 않고, 예수님의 영적인 전쟁에 대한 승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으며 살아가려고 하고 만인을 영원한 가족을 생각하면 더 이상 만인을 생존 경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섬김의 대상으로 보며 살아가는 하나님적 삶, 다음 세대의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신자들이 많아질 때 하나님 나라는 침노 당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사탄도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주 본문 누가복음 11장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을 향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실제로 무당도 귀신을 쫓아낸다.

이와 같은 것은 독재 정부가 관제 데모를 통하여 민주화를 위한 데모를 무력화 시키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예수님의 천구에 대한 시위로서의 축사와 죄사함으로 인한 치유보다, 축사와 죄사함으로 인한 치유에 집착하게 해서 천국이 임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관제데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