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초안 요약문(구역공과)

천국은 어떻게 오는가? (7) 천국사관학교임관식)

차주희 2016. 1. 6. 17:48

 

13:31-33                                                                            

 

 

일반 학교는 그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격을 갖추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만 갖추려고 하고, 요구하는 스펙조차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역할에 맞추기보다 일률적인 스펙만을 갖추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일학교 교육도 비슷합니다. 성경적 지식이나 종교적인 규범만을 지키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진작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봅니다.

 

천국 백성으로서의 올바른 자격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천국은 어떤 곳인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또한 천국을 알려면 사람들이 이루려고 하는 천국에 반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어떻게 오게 하려고 하였는지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는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라고 하고,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천국을 겨자씨와 누룩에 관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와 누룩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천국은 그 당시 가장 핫한 열심당의 천국 운동에 반한 것임을 말씀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열심당은 인적쇄신과 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사회를 혁명적으로 개혁하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열심당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 66년에는 로마에 대한 대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70년에 로마의 티토 장군에 의하여 이 운동은 종식을 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는 것으로 종말을 고하였지만....

반면에 예수님의 천국 운동은 너무나 미미해서(지지자들이나, 성과면에서나)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으나, 점점 확대되어 견고히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천국은 은닉성 점진성 필연성의 성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코 인적쇄신이나 제도 등, 인간에 의한 혁명이 아닙니다. 인간에 의한 혁명은 기득권층의 변화와 또 다른 개혁이 요구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적인 가족제도를 넘어서는 영원한 가족의 공동체를 만드심으로 천국을 도래하게 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천국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천국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말씀 드린대로 이 땅에 천국은 결코 이 세상의 내재적인 것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초월적인 것이 은혜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드린 은닉성, 점진성, 필연성적인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이 만든 공동체와 제도가 많이 있습니다. 인간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공동체와 제도를 만들지만 결코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전제주의와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어떠한 왕정과 정권도, 어떠한 영주와 주식회사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이 세상에 가장 완전한 공동체와 제도가 있다면 가족일 것입니다. 사족은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공동체와 제도가 아닙니다. 다만 시대에 따라 가부장적 가족이나, 모계 중심의 가족 등으로 변형은 있었지만 그것은 인간에 의하여 변질된 모습이지 가족의 원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각각 아이들에게 자기가 갖고 싶은 선물과 부모님에게 드리고 싶은 선물이 무엇이냐고 묻고,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자 모든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드릴 선물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묻자 자기가 갖고 싶은 장난감은 자가 가정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고, 부모님은 한 번도 선물을 받아 본적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이러한 것이 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살면서 체득된 경험에 의한 본능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능적 선택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 주신 최고의 선물인 가족제도가 인간에 의하여 집단이기로 바뀐 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문제는 집단이기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인간의 모든 공동체와 제도는 집단이기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간에 의한 공동체와 제도로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영원한 가족 공동체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일학교는 영원한 가족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잘못됐다고 구성원을 바꿀 수도 없고, 제도를 바꾸지도 않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엄마가 잘못한다고 바꾸지 않고, 아버지의 역할을 엄마가, 아들의 역할을 아버지가 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다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규범이나 전통이 아니라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점진적으로 보이지 않으나 서서히 자라납니다.

 

성장할수록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해서 든든한 공동체가 되고, 자신의 역할이 끝났을 때 또 다른 섬김을 받는 복된 신앙적 생애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은 능력에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점진성)

가족은 스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필연성)

가족은 평소에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하는 거싱 가족입니다. (은닉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