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초안 요약문(구역공과)

천국은 어떻게 오는가? (9) 설교 요약문

차주희 2016. 1. 10. 17:47

 

천국은 어떻게 오는가? (9)

 

12:1-12                                                                     287장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신전이 있고, 신전에서 행해지는 종교적인 예식이 있다. 유대교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무이고,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성전을 무시하고 제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분명히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성전과 제사를 왜 예수님께서는 무시하였는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안식교나 하나님의 교회와 같이 구약의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기독교는 성경적이지 않다고 하거나, 구약은 유대교이고, 신약은 기독교이다. 그러므로 신약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대주의가 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분이 되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 되고, 구약은 하나님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되기도 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천국과 상관없이 종교적인 형식만 존재하는 일반종교와 같아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정한 성전과 제사는 구약의 성전과 제사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유대교가 생각하는 성전과 제사를 부정한 것이다. 유대교와 구약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을 맛보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구약의 성전과 제사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과 제사에 대한 말씀과 관계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과 제사를 알아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의 성전과 제사에 대한 생각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열혈당 3개 분파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1947년 아랍 목동이 우연히 쿰란 문서(사해 문서)를 발견하면서 에센파라는 분파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은 이 중에서 먼저 사두개파에 의한 유대교를 생각해 보면서 예수님께서 왜 유대교를 부정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봄으로 기독교의 참된 진리를 회복하고자 한다.

사두개파는 당대의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에 성전과 제사에 열심이었다. 그래서 사두개파는 모세 오경만을 믿었으며, 모세 오경에 나타나지 않는 부활이나 내세나 천사들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구약의 제사장들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에는 왕은 다윗의 후손이어야 한고, 대제사장은 아론의 후손 중에서 사독 계열이어야 했다.

그런데 스룹바벨 이후에 다윗의 왕조는 완전히 무너졌고, 대제사장도 사독계열이 아니라 일반백성이 대제사장이 되었던 것이다.

B.C 172년에 셀루키드 왕조에서 에피파네스라는 별명을 가진 안티오커스 4세가 유대교 말살 정책을 쓰면서 제일 먼저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인 호니 3세를 물리치고 라이벌 가문에서 대제사장을 삼았다. 그리고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할례를 금하고, 안식일 지키지 못하게 하고 돼지고기를 먹이고, 성전에서 돼지 피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막카비 형제들이 중심이 되어 안티오커스 4세를 대항하는 독립 운동이 일어나서 종교적 자유를 얻었고, 나중에는 정치적인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막카비는 종교적인 자유를 얻고 난 뒤 사독계열의 대제사장을 삼지 않고, 자신의 동생 요나단을 대제사장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러한 행동은 제사장들에게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B.C 152년 일단의 제사장들과 일반 백성 중에 경건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성전과 제사와는 절교하고 광야에 가서 진정한 성전과 제사를 회복하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이들이 에센파인데 사해 문서에서 발견된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렇게 종교적으로 타락한, 정권에 추종하는 대제사장과 그를 추종하는 제사장들에 의해서 성전과 제사가 더럽혀진 것이었다.    

사두개파는 성전과 제사의 중심에 있었지만 하나님보다 현실 정권과 돈벌이가 목적이 되는 종교인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성전은 하나님의 거처지로서 제사를 통해서 죄인인 인간들이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격을 얻게 되고, 즉 예배자가 되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으로서, 죄인은 제사를 통해서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회복되는 중요한 예전이었다.

이러한 제사를 드린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물질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영위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생존 경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섬김의 대상으로 삼아 살아감으로 이스라엘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일반백성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타락한 제사장들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뇌물을 주고 대제사장이 된 자와 그를 추종해서 부를 유지하려고 하는 제사장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나?

그들은 일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천국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자신들이 제사장으로서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제사의 본질보다는 제사 형식에 참여를 강조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공로신학을 도입하거나, 하나님의 진노를 살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보다는 종교적인 억압만 받지 않았겠나?

그들은 선지자들의 메세지보다 모세 오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정통성에 대한 시비와 자신들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이 멀게 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에 의해서 드려지는 제사와 성전을 거부하고,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신이 제물이 되는 제사를 드림으로 더 이상 인간에 이용당하는 인간에 의해서 드려지는 단회적인 제사를 다시는 인간에 의해서 이용당하지 못하도록 영원한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에 의해서 드려지는 한시적인 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 나아 갈 자격을 얻은 것을 알고 더 이상 미완료형으로 믿지 말고 완료형으로 믿음으로 어떠한 종교적인 억압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과 온전한 연합의 삶을 살아감으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의 공동체를 통하여 천국을 맛보다가 주님의 재림의 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복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