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초안 요약문(구역공과)

교회, 예수님에 대한 증인 (설교 요약문)

차주희 2016. 2. 25. 20:42

 

16. 2-21 (요한복음 2)

 

교회, 예수님에 대한 증인

 

1:29-34 (19-37)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135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증인으로 당대의 가장 존경받는 세례요한을 삼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제사장과 레위인을 당대에 신학적으로나 경건에서 가장 존경받는 세례 요한에게 보내 “네가 그리스도냐?” 물을 때, 자신은 아니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오늘 날도 교회가 예수님에 대한 증인으로서 존재해야 하는데, 세례요한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증인으로서 교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증인으로서 자기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1:19-28)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묻자, 세례 요한은 드러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또 묻기를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묻자, “나는 아니라” 합니다.

또 묻되 “네가 그 선자지냐?” 묻자, “아니라” 합니다.

그러자 우리를 보넨 이들에게 “너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해야 하느냐?” 하자,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으로서 세례요한의 모습은 자기 부정입니다.

 

오늘 날 교회의 자기 부정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교회나 목사님이나 교인들이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려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3:12절에 성전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에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베드로와 요한은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합니다.

 

 

둘째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1:29-34)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인 것을 자신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줄 때에 알았다고 하면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가지고 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원문은 세상 죄를 쳐 없애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오늘 날 교회는 세상 죄를 쳐 없애버린 예수님에 관한 증인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기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쳐 없애버린 죄는 이기심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교회는 얼마나 자기 중심적입니까?

 

 

셋째 자신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추종하게 해야 합니다. (1:35-37)

 

세례 요한의 증언을 듣자 세례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안드레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따랐다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에는 요한의 독특한 어법이 있습니다. 물리적 현상 속에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세례 요한을 따르다가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추종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9:23-26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합니다.

 

오늘 날 교회는 예수님에 대한 추종자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자기를 추종하라고 합니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하여 예수를 믿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절에 다니다가 교회에 다닌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이동만 한 교인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 때입니까?” 묻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자기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기 위하여 들어야 하는데, 자기 생각에 맞으면 아멘하고, 맞지 않으면 노멘하는 신앙이 얼마나 많습니까? 설교에서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잘못알고 있었는가? 깨닫게 하는 설교가 제대로 된 설교이고, 제대로 설교를 들은 것이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은 듣겠나이다.” 라고 하는 자세를 읽고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증인으로서 교회가 존재하려면

첫째 자기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교인들이 목사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추종하게 해야 합니다.

 

 

* 나누어 봅시다.

 

1.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당신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인가?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인가?

  당신은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깨닫고 순종하기 위하여 읽고 듣는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하여 읽고 듣는가?

 

3. 예전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자녀만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을 자신의 자녀와 같이     생각하며 사랑하는 모습이나, 성경과 설교에 철저히 순종하려고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 한국교회는     세상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추종함으로 변화된 당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아니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