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초안 요약문(구역공과)

무엇을 위해 예수를 믿습니까" (설교 요약문)

차주희 2016. 3. 1. 11:33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믿습니까?

 

1:35-39                                                                                                                                       89, 부흥

 

 

예수님을 따르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또 한 제자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묻습니다. 무엇을 추구하느냐?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에게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까?” 묻습니다. 어느 세계에 속하느냐?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라” 합니다. 예수님의 identity를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초청에 그들이 “계신 데를 보고, 함께 거하니, 때가 열시쯤 되었더라.” 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identity를 확인해 보고, 동참하게 되었는데, 때가 10시쯤 되었다는 것은 금요일 오후 4시로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으로 유대인에게 충만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identity를 확인해 보고, 예수님께서 속한 세계에 동참해야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삶은 안식일 것입니다. 그래서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고 합니다. 즉 한 주간 열심히 일을 한 자가 누리는 보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질 때입니다. 인간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억울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 때입니다. 수고의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법을 제정하고 제도를 만들려고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절대로 죄인인 인간에 의하여 이루어 질 수 없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려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identity를 확인해 보고, 예수님께서 속한 세계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정권이나 종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속한 세계에 속하려고 해야 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128:1-2절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으로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합니다. ‘네가 네 손으로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수고의 정당한 대가 주어질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날 교회는 예수님의 identity를 말해 주지 않고, 예수님께서 속한 세계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성장과 축복만을 선포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먼저 예수를 믿는 이유가 정의로운 사회가 되게 하려고 믿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도 공정한 공동체를 위하여 희년제도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희년의 정신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공정한 공동체를 회복한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한 우리의 자녀들이 자신이 공부하고 노력한 만큼 취직을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평생 열심히 일을 한 우리의 아버지들이 평안한 노후를 꿈꾸며 은퇴를 기다리는 사회가 되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미국에 이민사는 것이 꿈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은 기회의 땅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열심히 일을 하면 일한 만큼 잘 살 있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한때 우리나라도 그런 사회였습니다. 누구든지 열심히 일을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나라는 금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수고해도 뚫을 수 없는 유리천장의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대통령을 탓하고 국회의원을 탓하고 기업가를 탓하고 사회를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사명을 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우리에게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사명을 준 것입니다.

대하 7:14절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59:14-16절에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나타나지 못하는도다.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합니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 대하여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없음을 이상히 여긴다고 합니다.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하여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identity에 대하여 알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속한 세계에 우리도 동참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identity에 대하여 알고자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identity에 대하여 어떻게 알게 되는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 나누어 봅시다.

 

1. 당신은 무엇 때문에 예수를 믿습니까?

 

2. 당신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예수님에게 당신은 어떻게 동참하고 있습니까?

 

3. 예수님으로 인하여 누리게 되는 개인적인 구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사회가 누리게 되는 구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4.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나누어 보고, 대하 7:14과 사 59:14-16절을 읽고, 부흥 찬양을 한 후에 공의     로운 사회와 공의로운 사회를 위한 앞장서는 한국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3개의 질문

1:43-51 (35-51)                                                                205

 

1. 왜 예수를 믿습니까?

2.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 예수님의 초청 / 나를 따르라

    - 나를 추종하라.

  * 예수님을 따른 빌립의 증언 /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 18:18, 4:5-6절 구약에 예언된 그이 만났는데, 나사렛 예수더라.

    - 나다나엘의 반응 /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없다.

    - 빌립이 ‘와서 보라’ 초청

    -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참 이스라엘이다. 무화과 나무아래에 있을 때 보았다.

  # 성경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 예수를 믿을 수 있다.

 

3. 왜 성경을 알고자 해야 합니까?

  * 더 큰 일 보리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보게 되리라

    - 28장 랍비들의 해석을 통하여 예수님을 설명하는 것이다.

    -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하나님을 알아야 예언이 아니라 성취를 보게 된다.

  # 신관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신비한 하나님 나라

    - 6:9, 28:26, 13: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                                      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 귀하게 여기던 것 값없게 된다. / 초등하교 졸업과 딱지와 만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