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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인생(열왕기상 7장 1-12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7. 2. 16.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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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김종웅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인생

열왕기상 7 1-12

2017 2 12일 주일 낮 예배

                                                                                                                                                            No. 302

1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2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3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4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5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6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7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8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9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10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11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12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아멘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이 말씀이 우리의 삶의 가치판단에서나 우리의 삶의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종의 마음 노예의 마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난 뒤 480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였다. 출애굽의 목적은 성전 건축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말한다. 성소는 정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나라 실존적이라는 것이다. 호렙산에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교회 다니는 분들을 이래 보면은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환경 때문에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교회 다니거나 아니면은 자기의 직장 또 대학 이런 데에서 안 다니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또 옛날에는 불신자 결혼을 하면은 중직 자들도 징계를 받았는데, 이제는 그러지는 안 하고, 자녀가 불신자와 결혼을 할 때에 너 예수 믿겠느냐 해서 예하면 결혼을 허락한다 이래서 결혼하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 이런 경우가 참 많아요.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해야 되겠는데 여러가지 삶의 형편 때문에 열심히 못해서 그저 목사님 만나면은 미안하고 죄송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교회에 다니기는 다니는데 형편상 왜 다녀야 되는지 모르고 생활을 따라서 그저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 이런 분들에게 중요한 답을 제공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먼저 우리가 신앙 생활에 있어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은 6장에 보면은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제사를 드리기 위함, 예배 자가 되기 위함, 바로 그것이 구원의 목적이다. 교회 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고, 가정과 사회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내가 육신적으로 사는 삶이라는 것은 헬라적 생각이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난 뒤에 480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연대기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출애굽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성전 건축으로 완성되는 것임을 말하는 거에요. 실제로 출애굽기 5장에도 보면은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우리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보내 달라 이래 안 합니다. 우리 백성들이 광야로 가서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 하는데 바로가 안 된다 그랬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제사를 드리기 위함, 예배 자가 되기 위함, 바로 그것이 구원의 목적이에요.

 

오늘도 우리는 이런 부분들을 참 많이 놓치고 예수를 믿는 것 같아요. 내가 예수 믿고 구원을 얻은 것은 그저 천국 가기 위함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배 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 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에요, 그런데 이 예배에 대해서 많은 오해가 있어요. 신앙 생활에 많은 오해가 있는 것이 문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화과나무 아래와 포도나무 아래에 평안히 거하는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목적인 것을 말을 하는데,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열심히 사업을 하면서 그 열심히 하다 보면은 교회 생활을 좀 등한시할 때에 내가 이래 믿어도 되는가 이래 살아도 되는가, 그리고 목사님 보면은 교회 생활을 좀 등한시하는 것 같을 때에 미안 해하고 하는 것들은 우리가 성경의 내용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고, 잘못 알기 때문이에요.

 

또 예배가 무언지 신앙 생활이 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생각들은 왜 그런가 하면은 원래 이 성경은 히브리적으로 사용해야 되요. 히브리적 생각을 가지고 봐야 되는데 이 성경이 헬라 세계 속에서 꽃을 피우잖아요. 그러니까 헬라 사상이 참 많이 들어와서 변질 시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늘 느끼는 것이 뭡니까, 정말 성경의 많은 개념과 성경의 말씀들이 오늘날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이념이 우리 성경의 개념을 많이 왜곡하는 것하고 같은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 왜곡이 뭐냐 하면 이런 거에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의 여러 영역들이 있잖아요, 가정 생활이 있고, 또 직장 생활이 있고, 또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의 영역이 있고, 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 생활의 영역이 있고, 또 학생들은 학생 생활의 삶의 일부가 있고, 또 교회 생활도 이래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삶의 여러 이런 영역들이 우리의 삶인데, 사람들은 뭐라는가 하면은 교회 생활 자체가 예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교회 생활을 등한시하는 것은 다른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을 하는 거에요. 여러분 이 기준이 잘못된 거에요. 그런 것들은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서 그런 거에요. 교회 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고, 가정과 직장과 사업이나 사회생활이나 학교 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내가 육신적으로 사는 삶이고, 이것은 헬라적 생각이에요.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히브리적 생각은 뭐냐 하면은 우리의 가정 생활이나 그 다음에 우리의 직장 생활이나 우리의 사회 생활이나 내가 사업하는 사업장에서나 그 다음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회 생활이나 이 모든 생활이 예배여야 되요.

 

2.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내 일생의 모든 삶의 영역이 결코 분리되지 않고, 나의 모든 일생의 삶이 하나님의 성전에 의해서 둘러 쌓여 져 있는 것을 말한다. 성령이 여러분들 속에 함께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예배 자의 모습이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나타나야 된다.

 

이러한 삶이 참된 예배 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오늘 분문이에요. 이것 모르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 성경 6장과 7장을 겸하여 보는 것은 함께 읽어 보면은 6장에는 성전 건축에 대한 말씀이 자세히 기록이 되어져 있고, 7장 읽지 않은 뒤편에는 성전에 있는 여러 기구들에 대한 말씀이 기록이 되어져 있어요. 고 사이에 왕궁 건축에 말씀이 있다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왕궁 건축은 성전 이것 하고 난 뒤에 8장 이래 해도 되는데 그 사이에 넣은 놓은 이유를 아셔야 되요. 성경의 기록자는 하나님인데 이 기록한 것은 예레미야가 했다 말입니다. 연대기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거든요.

 

분명히 연대기적으로는 성전을 건축하고 왕궁을 건축했는데도 성전 건축을 그 사이에 딱 끼워 놓은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이 예배의 삶이 우리의 집을 세우기 아니고 내 일생을 위한 중요한 것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내 일생의 모든 삶의 영역이 결코 분리되지 안 했고, 나의 모든 일생의 삶이 하나님의 성전에 의해서 둘러 쌓여 져 있는 것을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들이 참 이번주에도 심방을 가니까 열심히 사업을 하는데 하나님 내가 모태 신앙인으로서 열심히 사업을 하는데 교회 생활을 등한시해서 미안합니다 이런다고요,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모든 삶의 영역이 예배의 삶이 되야 되요. 교회 생활도 여러분들의 삶의 한 부분이지만은 이 교회 생활조차도 예배가 되지 아니하면은 종교인이 되어져 버리는 거에요. 이 삶의 예배가 뭐냐, 진정한 신앙 생활이 뭐냐, 하는 것을 아셔야 되는 거에요. 또 마지못해서 교회에 왔다 갔다 하지만은 하나님과 만남이 없는 종교인들의 생활 그것도 아니라 말입니다. 제가 예전에 여러분들에게 그런 이야기 한번 했지요, 참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흉한 것이 3가지가 있다고, 하나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 했잖아요, 아무리 집이 아름답고 잘 세워져도 그곳에 사람이 안 살면은 흉가에요. 그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에요.

 

또 아무리 사람이 예쁘고 멋있더라도 영혼이 떠난 것 생명이 없는 육신은 시체다 말입니다. 그것은 누가 봐도 흉해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정말 성령이 함께하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종교 생활하는 것은 정말 흉한 모습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시간에 성령이 여러분들 속에 함께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 여러분들의 모든 삶의 영역 속에서 나타나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왕궁건축을 성전이 이렇게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분명히 우리의 삶에는 직장 생활이 있고 가정 생활이 있고 그 다음에 교회 생활이 있지만은 모든 삶의 영역이 신앙 생활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삶이 되어야지, 결코 교회 생활은 신앙 생활이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심이고, 다른 삶은 육신적인 삶이고 세상적인 삶이라는 생각을 먼저 버려야 되요.

 

3. 다른 사람에게 유익된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준비하는 생애를 사는 것은 20대가 드리는 예배이다. 자녀교육도 양육도 예배의 삶이다. 부유함이 자신에게도 누림이 되면서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삶이라면은 그건 정말 아름다운 예배이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어떤 신앙의 설교를 해야 되는가 하면은 저는 이래 생각해요. 사람이요 20대까지는 정말 열심히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 하는 기간이에요. 여러분 일생을 정말 성공적인 생애를 산 사람은 나중에 60, 70, 되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을 한 사람이 부러운 사람이 아니에요. 각 주어진 세대의 맞는 가장 삶을 성실하고 행복한 생애를 산 사람이 일생을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20대 까지는 내가 한 사람의 삶을 살도록 열심히 자기의 일을 준비하는 기간이에요. 또 우리 엄마들은 자녀들을 20대까지 잘 자기의 생애를 살도록 준비를 잘하는데,

 

그것이 예배의 삶이 되려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 준비가 자기만을 위해서 살도록 남들보다 더 실력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면 안 되요. 다른 사람에게 유익된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준비하는 생애를 산다면은 그건 20대가 드리는 예배에요. 30대와 40대는 그 준비되는 것을 가지고 이제 살아 보는 거에요 열심히, 그래서 여러분 제가 우리 교회에서 그러잖아요, 아이들이 아직 어린 사람들은 교회 생활보다도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고, 물론 교회 생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에요. 기본적인 교회 생활을 하면서 30, 40대에는 내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이 예배의 삶이에요.

 

왜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생활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그런 삶을 살기 위함이에요. 그러면은 아이들을 잘 기르는 것이 뭔가? 아이들을 서울대학교 보내고 고시패스 하게하고 이러는 게 잘 기르는 게 아니에요. 내 아이가 자기만 아는 아이가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 배려할 줄도 알고 관심을 가지면서 살아가고, 자기 몫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삶을 살도록 기르는 것이 그렇게 기르면은 자녀교육도 자녀양육도 예배의 삶이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 50대가 되어지면은 우리의 삶의 뭣이 있는가 하면은 열매를 맺히는 시기거든요, 그래서 50대에는 경제적으로도 좀 풍요로워야 되요.

 

그런데 그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상실감을 가지게 하고 낭비의 즐거움으로 사는 삶인가 아니에요. 부유함이 자신에게도 누림이 되면서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삶이라면은 그건 진짜 아름다운 예배에요. 교회에서도 그래야 되고, 내가 사회에도 그래야 되고, 내 가정 생활도 그래야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 성전이 왕궁을 다 둘러싸고 있잖아요, 이런 예배 자의 삶을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하나의 예배의 교회 생활은 곧 신앙 생활이고 예배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삶의 영역은 세상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헬라적 사상이에요.

 

4.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신앙 생활 예배 자가 되는 삶을 살아야 된다. 30 40대의 교인들이이들 내버려두고 교회 와서 열심히 사는 것은 잘못된 신앙 생활이다. 60대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교회 와서 섬겨야 할 영역들을 섬기는 것이 예배이다.

 

분명히 우리의 삶에는 교회의 한 생활하는 한 영역이 있지만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신앙 생활 예배자가 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30, 40대의 아이들이 어릴 때에 아이들 내버려두고 교회 와서 열심히 사는 것은 잘못된 신앙 생활이에요. 연세 드신 분들 이제 그때는 있는 것이 시간이잖아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 젊을 때에는 스마트폰에 스팸이 오면은 짜증이 나잖아요, 60대가 되어져 보세요 그 스팸도 반가울 때가 온다 이 말입니다. 그때에 60대에 있는 것이 시간이니까 자기는 교회 와서 늘 사는 게 좋은 것인데 30, 40대 아이들 분주한 사람들보고 맨날 세상일만 할거야 언제 잘못된 생각이에요 우리가 그런 것이 얼마나 많아요.

 

50대에 열심히 사업하고 직장 생활 해서 가정의 부유함과 교회의 부유함과 사회의 유익된 생애를 살아가야 할 사람이 50대와서 늘 교회 와서 할 일이 없어 가지고 교회 생활만 하면서, 사회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세상일만 할거냐고 잘못된 생각이에요. 50대에는 우리의 생애에서 열매를 맺는 그 시기에 그 열매가 자신에게도 누림이 되면서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 50대에는 교회에 헌금도 많이 하시라 이 말입니다, 세금도 많이 내시라는 말입니다. 60대가 되면은 그때는 은퇴한다고, 그 은퇴하면은 있는 것이 시간이라고,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스팸 조차도 반갑다고, 그때에는 있는 게 시간이니까 그때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그럴 때에는 맨날 맨날 내버려 두었다가 있는 것이 시간이니까 아이들 졸졸 따라다니면 아이들이 싫어한다 말입니다.

 

남편도 열심히 사회생활 하다가 뭐 아내 어쩌고 저쩌고 놔 두었다가 60이 되가 이제 그때서 젖은 낙엽같이 딱 붙어 있으려면은 귀찮다 말입니다. 그때는 뭐해야 되는가 교회 와서 열심히 봉사하고 또 자기의 노하우를 가지고 사회에 섬겨야 될 영역들을 섬기고 이런 것이 예배에요. 그러다가 이제 70이 넘어가면은 요즘은 70하면 안 되겠더라 이금희 권사님 그만 둘까 봐 ㅎ ㅎ ㅎ 건강이 허락하면 한 75세쯤 더 허락하면 한 80세쯤 그래서 우리 장로님들이 자꾸 70세에 은퇴하자는 것을 내가 그런 법이 어디 있나, 건강이 허락하면 80에도 되고요, 70에 골골하면 또 70에 은퇴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우장로님 자꾸 은퇴 하려는데 우장로님 지금 어디에 가도 50대 얼굴이지 뭐 70대 얼굴입니까, 그래서 이제는 힘도 없고, 호주머니 돈도 비어져 가고 기억력도 그러면은 그때는 이제 섬김을 바는 그 자체가 예배에요. 그래서 성경에 사랑의 빚은 지라고 한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왕궁을 건축하는 이 중간에 성전의 건축이 연대기로는 분명히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탁 둘러싸고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이 예배 성전이 우리의 왕궁의 삶, 우리의 집을 세우기 위한 것을 말한다고,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 와서 참 편하다, 그런데 미안하다 하는 것은 편하다는 것은 내가 성경적으로 목회하는 것이고,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에 잘못된 신앙의 선입견 때문이에요.

 

여러분 그런데 오늘날 우리 속에 이런 게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회사는요 20대에 그 왕성한 지식력 30, 40대의 열정, 50대에 원숙함, 이 모든 것을 원해요. 그래서 일률적인 스팩을 정하고 그 스팩에서 벗어나는 순간 퇴출시켜 버려요. 그러면 회사는 번영을 하는데 그 안에 사람은 없는 거에요. 교회에 우리 그런 것 얼마나 많아요. 30, 40대에 그 여러분 왕성한 지식력과 40대에 그 뜨거운 열정과 50대에 그 여유로움을 모든 세대에 요구해서 재단시키는 것이 제자훈련이잖아요 아니에요. 왜 가정이 좋은 줄 아세요, 가정에는 어릴 때에는 부모가 모든 것을 주어요, 그 다음에는 자기 역할 하다가 나중에 부모 섬기고,

 

5. 성막의 중요한 것은 지성소는 하나님의 의자가 있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성소에는 정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가 있고 실존적이라는 것이다. 성전 뜰에는 놋으로 만들었다, 빛깔만 금 색깔이나 그 질은 놋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울음 소리도 있고, 연세 드신 분들의 끙끙거리는 소리도 있고, 일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땀냄세 나는 것이 있는 그런 가정이 좋은 가정이잖아요,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여러분들의 일생이 이제는 그런 이분법적인 생각은 하지 마세요. 내 세대에 해야 할일 그 일이 행복이 되야 되요. 20대는 공부가 행복이 되야 되요, 어떤 영역에서든지, 30대에는 그 공부한 것을 적용하는 것이 행복이 되야 되요. 50대에는 자기가 했든 것들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이 즐거움이 되야 되요. 60대는 누림이 되야 됩니다. 70대는 섬김이 있는 것이에요. 정말 저는 이 성경을 보면서 왜 우리가 그런 생각을 못하는가 하면은 자꾸 이 성경을 보면서 봐라 솔로몬은 성전 지을 때 7년밖에 안 했고, 왕궁 지을 때 13년 했다 잘못됐다.

 

왕궁 건축과 성전 건축을 분리 시키는 헬라적 성경 해석 법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우리 교회에 와서 여러분들이 참 편하다는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에요. 제가 젊은 엄마들에게 60대의 시간과 헌신을 요구하지 않거든요. 60대에게 50대의 헌금을 하라 소리 안 하거든요, 70대와 80대에게는 섬김 받는 자체가 예배라고 생각해서 섬기거든요, 우리 아름다운 손길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여러분들이 평안하게 생활하는데 이게 좋은 줄 모르는 것 같은 거요, 거기 어디에서 나오는 줄 모르는 것 거에요. 그리고 또 한가지 아셔야 되는 것이 여러분들이 성막 많이 공부했지요, 그런 것 다 모형론 적인 것 너무 생각하지 말고요, 굉장히 중요한 것은 지성소는 하나님의 의자가 있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에요.

 

그리고 그 밖에 가면 성소에요 그 성소에는 등대와 진설병과 또 향단이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가요, 동쪽으로 향하는 보아서 야긴의 문을 나서면은 성전 뜰이 있어요, 그 성전 뜰에는 물두멍과 번제단이 있어요, 여기 성경에 그래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가 성소에 있는 모든 기구들은 정금으로 만들었어요, 성전 뜰에는 놋으로 만들었어요,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은 그 성전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해요, 성소는 정금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정말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가 있고 실존적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 보아서와 야기네의 문밖에 있는 성소의 뜰은 기구를 놋으로 만든 거에요. 금이 부족해서 놋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말입니다.

 

놋과 금은 색깔은 같은데 질은 달라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과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은 우리가 지상에서 맛보는 천국하고는 질적으로 달라요. 우리의 육신의 모습도 질적으로 다른 영원히 변치 않는 영원한 가치의 하나님의 나라에요. 그런데 성전 뜰은 지상의 천국인 교회를 말하거든요, 이 지상에서의 신앙 생활을 말하는 거에요. 우리의 삶은 분명히 빛깔은 금 빛깔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뭐라고 하는가 하면은 우리 교회에 여러분들 표어에 보면은 교회를 통하여 맛본 천국이에요, 빛깔만 금 색깔이에요. 그런데 그 질은 놋이에요. 우리는 분명히 성령과 보혈의 피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겉은 포장되어 있지만 안에는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요.

 

6. 놋과 금의 차이는 금은 가만히 놔두어도 그 색깔이 변하지 않고 존재 하지만, 놋은 끊임없이 닦아 주어야 된다, 경건의 훈련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훈련이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행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봐야 된다.

 

그래서 우리 속에는 욕심도 있고 많은 생각들이 있다고요, 그런데 그 놋과 금의 차이는 금은 가만히 놔두어도 그 색깔이 변하지 않고 존재 하지만은요, 놋은요 끊임없이 닦아 주어야 되요, 우리가 어릴 때에 그릇은 전부 놋그릇이거든요, 그래서 제 어머니가 그 놋그릇을 짚을 이래 뭉쳐 가지고 아궁이에 불 땐 재를 가지고 뭐 닦으면은 요즘과 같이 그런 화학 재질이 아니라, 그러면은 빤짝 빤짝 빛나요, 그게 경건 훈련이라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경건의 훈련을 신앙 생활의 연조가 더해 갈 수록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천국의 빛남이 있어요. 그런데 그 경건 훈련을 그저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헌금이라 생각해요.

 

그 경건의 훈련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예배 때 여러분들이 왕이신 나의 하나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훈련이라 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죽어야 될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다 이런 사람들의 삶은 자유가 있어요, 평안이 있어요, 왜 다른 사람을 여러분들이 섬기지 못하는가, 하나님이 주인이라 생각 안 해요, 내가 내 힘으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얼 해도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을 고백 속에 이게 경건 훈련이에요. 그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자꾸 다듬어 져야지요.

 

여러분 이런 신앙 생활하려면은 진정한 예배 자가 되려면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만남이 있어야 되요. 그런데 그 하나님과의 만남조차도 이래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왜 그런가 하면은 간증 때문이라고, 나는 어느 날 기도하다가 환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나는 정말 가정과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교회 생활에 전염하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 가정도 책임지고 뭐도 책임질 거라고 이런다고요, 그런데 나는 기도만 하면 잠만 오지 하나님 만나기는커녕 ㅎ ㅎ 어디 가나 성경을 읽다가 꿈속에서 성경을 읽었는데 그때부터 내 생활이 이래 변하였다고, 어떤 사람은 기도하다가 내 기도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하나님 때문에 응답 받고 난 후부터 그때부터 교회 생활 전염하게 되었다고, 아니에요.

 

어떻게 하나님 만나게 되는가 호렙산에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야 되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하였든 그 하나님을 만나야 되요. 그런데 유대인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잘 드리면 복 주는 하나님으로 유대교가 바꾸었을 때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암송만 해요. 예수님에게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을 만나야만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예배 자가 됩니다. 예수님에게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행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봐야 되요.

 

7.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보고 요한이나 바울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고 말을 해야겠는데 사랑이라는 말이 헬라어에는 그래도 아카페가 제일 접근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개념을 담아서 카리스 아카페 라고 말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대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 십자가에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우리 인간하고는 전혀 감히 생각도 못했든 그 하나님이 나타나신 거에요. 그 동안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이 늘 율법을 잘 지키고 예배를 잘 드리면 복 주는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할 때에 그 하나님은 나하고 똑같은 하나님이잖아요. 여러분들이 나에게 잘 해주면은 그 사람 좋게 보이고 못 해주면 나쁘게 보이는 것은 우리 인간의 수준이잖아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잘하고 잘하는 자에게 복주고, 못하는 자에게 벌주는 하나님이라면은 우리 인간 수준의 하나님이잖아요, 경외함이 안 생기는 거에요. 그 심애[深愛] 만 받은 사람에게 경외감이 생기는 거에요.

 

십자가에서 계시된 그 하나님은 아무런 쓸모 없는 자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아니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행위, 그것을 하게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난 것이 십자가에요. 그래서 유대교의 젖어 있었든 요한이나, 유대교의 젖어 있었든 바울이 충격을 받은 거에요. 충격을 받고,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할 때에 그 사랑이라는 개념이 어디에도 없었거든요, 인간 사회에는 우리 다 안다는 것은 인간 이 지상에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존재하는 행위에 대한 언어잖아요. 어떤 인간이 쓸모 없는 자에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주는 그런 사랑이 이 세상에 어디에 존재합니까.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 하나님을 보고는 요한이나 바울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라고 말을 해야 되겠는데 그 사랑이라는 말이 헬라어에는 아카페 필레오 스톨게 에로스가 있는데, 그래도 아카페가 제일 접근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 개념을 담아서 카리스 아카페 라고 말한 거에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한 그 행위를 하나님의 은혜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느 인간이 그 사랑을 가지고 그것을 구원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헷세가 하나님의 은혜 카리스라는 이 카리스라는 말을 하나님적 그 베푸는 은혜에 규정한 것이 카리스에요. 이 사랑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를 통해서 경험을 해야 되요.

 

여러분 제가 또 이야기 했잖아요, 하나님은 결코 기도를 할 때에 쌀독에 먼지가 변해서 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 안에 거하시면서 하나님 노릇 해주는 거에요. 교회 와서 분명히 여러분 나는 온갖 몹쓸 짓만 하고 교회에 구정물만 일으키는데도 모든 목사님이나 교회와 장로님들이 항시 베풀어 줄 때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거에요. 나는 분명히 우리 교회에 짐만 되는 것 같은데도 목사님이 장로님이 교인들이 그를 천하하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거에요. 이것이 우리의 삶의 예배에요. 우리의 모든 신앙 생활이 그래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대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잖아요.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제가 창세기에서 했잖아요, 자기가 죽더라도 남 살리는 일을 하는 삶, 이 경외의 예배의 삶은 무엇이 있어야 되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려야 되요. 그래서 우리가 교회의 예배당 문을 나갈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다, 우리가 나가잖아요, 왜 그래야 사람을 손익의 관점에서 보지 않거든요. 우리는 놋이에요 날마다 갈고 닦아야 되요 말씀과 기도에서, 어떻게 사람을 유분리로 대하지 아니하도록,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로 하지 아니하고 나 같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로서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려고 할 때에 우리의 삶에 빛나는 금빛이 나면서 교회와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거에요.

 

그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교회 생활이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이 신앙 생활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지며, 자신에게는 누림이 되는 복된 생애를 사는 것이에요. 이게 오늘 6장과 7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 속에 이 예배의 삶을 살기 위해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심방을 가니까 목사님 미안하다 하면서 찬송은 뭐 좋아하느냐 하니까 이것 하더라고, 그래서 당신은 진짜로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 했어요. 304. 아멘

 

◈봉헌 기도◈

 

내 능력으로 재물을 얻었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재물 얻는 능력을 주심을 알아서 내 삶의 누림과 나눔의 삶을 살면서도 빚진 자의 삶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 예물에 담기어 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받는다고 기죽을 것도, 준다고 어깨 힘줄 것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헌금을 통해서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카리스와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아카페와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놋인 우리를 정금같이 빛나게 하시는, 그래서 우리 속에 있는 그 하나님을 드러내는 성령님의 교통과 역사하심이 오늘도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예배 자가 되어져서 어두운 세상에 한줄기의 빛이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이 맛을 보아야 할 천국의 맛을 보아야 할 주께서 몸 버려 세우신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