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종웅
거룩한 교회
고린도 전서 1:1-9
2018년 4월 29일 주일 낮 예배
No. 364
1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7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9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아멘
●고린도 교회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 지고, 카할 예훼(여호와의 총회)를 교회에 적용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린도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한다, 고린도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심장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확증시켜 준다.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들이 고린도전서를 설교하는 동안에 이 부분을 노치시면 안 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 지려고, 교회가 교회다워 지려면은 또한 성도들이 성도다워 져야 되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인다워 지면은 교회는 교회다워 집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는 누구보다도 성경도 열심히 읽고, 기도도 하고, 이러는데 신앙의 연조가 이래 더해 갈수록 정말 교인다워 져야 되는데 오히려 그러지 못한 모습을 참 많이 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성경에 있는 계명들을 성경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말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1. 여호와의 총회에서 제외되는 것이 구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거룩은 물리적인 개념으로, 물리적인 개념이라는 말은 구분, 구별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오늘도 이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편지를 받는 고린도인들 고린도 교회를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2절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이 말도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이런 말이지요. 구약에 야훼의 총회 여러분 구약성경에 보면은 “여호와의 총회” 라는 말이 나오지요, 그 총회에서 제외되는 것이 구원에 제외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총회 라는 말은 굉장히 중요한데 유대교에 이 말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게 구약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총회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보면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 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여기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고린도교회는 거룩하여 져 가고 있다.
또 교인들은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여호와의 총회가 되려면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려면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면은 교회가 교회다워 지려면은 거룩해야 됩니다. 교회의 특징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성장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일을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예배에 감격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특징은 거룩 성입니다. 옛날에는 교회가 무엇을 가장 중요시 여겼는가 하면은 거룩 성을 중요시 여겼어요. 교인들은 교회에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자신의 기능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교인들은 거룩해 져야 됩니다. 그런데 이 거룩에 대해서 많은 한국의 교인들은 무엇을 거룩 이라 생각하는가 하면은 신령한 것을 거룩 이라 생각해요.
그런 것은 종교적으로 거룩한 겁니다. 그래서 예배당은 고가 높고, 기둥이 크고,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그래서 뭔가 분위기가 신령하면은 좋은 교회 이건 아니에요. 옛날에 목사님들은 목소리를 굵게 해서 할렐루야 이래야 신령하게 보이는데 그것은 종교적인 거룩 이에요. 그런 것은 오히려 다른 종교 이런데 더 많잖아요. 성경에서 말하는 이 거룩은 물리적인 개념으로, 물리적인 개념이라는 말은 구분이 되어졌다, 구별 되어졌다, 이런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은 교회는 세상에 동창회 모임과 달라야 되요, 동호회 모임하고 달라야 되요, 향우회 모임하고 달라야 되요, 어떻게 달라야 되는가, 굉장히 중요한 거지요.
교인들 중에 가끔 이야기 하는 것이 교회가 왜 이렇게 친밀하지 못하냐, 친밀한 것은 동창회 친구들의 모임이 훨씬 더 친밀해요. 그러면 왜 교회에 다닙니까, 차라리 친구들끼리 계모임 하지 주일마다, 그런 게 거룩이 아니에요. 교회는 거룩해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 사람들이 교회에서 생활할 때에도 다른 사람하고 막 교제를 잘하고 친밀하게 하면 저 사람 믿음 좋아 아니에요, 그 사람은 외형적인 사람입니다. 거룩은 뭔가, 4절에 나옵니다. 4절을 한번 보세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목사님 그 말씀 속에 무슨 거룩이 있습니까, 행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 여행에서 개척한 교회이다. 사도로서의 자격은 두 가지 요건이 있어야 된다. 하나는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여야 되고,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를 못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바울이 뭐라는 가 하면은 항상 감사한다고 그래요. 자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는 뭐냐 하면은 고린도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앞으로 여러분들이 쭉 함께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은 고린도 교회는 엉망진창인 교회에요. 얼마나 엉망진창인가 하면은요 교린도 교회는 지난 주일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린 대로 바울이 2차선교 여행에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어요. 그런데 그 바울보고 뭐라는 가 하면은 사도의 자격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 아내를 데리고 다니면서 선교 비를 받는데 바울은 사도로서 자격이 없기 때문에 선교 비도 못 받으면서, 복음을 전한다, 이렇게 공격을 했든 교회 입니다.
왜 그랬는가, 고린도 교회와 바울 사이에 오고 간 편지가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만이 아니라 잃어버린 편지들이 있습니다, 한 다섯 번에 걸쳐서 보내는데, 바울이 눈물로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설득을 시켰어요. 그래서 화해가 일어났는데 바울과 자기 자신에게, 그러자마자 바울이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고린도 교회에게 예루살렘 교회가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내가 갈 때에 너희들이 헌금을 좀 미리 해 놓으면 좋겠다, 이러니까 고린도교회가 휙 돌아서 가지고 하는 소리가 일부 사람들이 바울은 돈만 밝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자격이 없다 사도로서, 왜냐 하면 사도로서의 자격은 두 가지 요건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여야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가 사도가 되는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바울은 너무너무 한이 되어서 하는 말이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다. 나는 사도라도 팔싹 동이 사도다. 나는 사도로서 참 자격이 결여된 사도다. 나는 미말에 처한 종이라는 말은 맨 말세에 처한 종이 아니고, 사도들 중에 제일 꼬랑지에 겨우 사도의 반열에 들어간 사도다, 이렇게 한탄도 한다고요. 여러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고린도교회는 바울에게 그러면 안 되는데 바울에게 사도권에 대한 시비를 하고 있어요. 또 뿐만 이니라, 고린도 교회는 조금 있으면 보게 되겠지만 많은 은사들이 있었어요. 그때 그 은사를 서로 비교하고 그래서 서로 질시하고, 질투하고, 패를 나누기도 하고 이랬다고요.
그런데 이런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뭔가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항상 너희 때문에 내가 감사하다, 이게 거룩 이에요. 여러분 나하고 뜻이 맞고 말이 통하고 이런 사람들하고 친한 사람은 그것은 그렇게 하려면 동창회 하세요. 그러려면은 친구들끼리 계모임 하라 말입니다. 교회는 어떤 곳이냐 하면은 나하고 말을 해도 말이 잘 안 통해, 저 사람 만나면은 상처되는 말만 들어, 저 사람 때문에 손해가 돼, 그런데도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믿는 것 하나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 이게 세상사는 사람들하고 다른 거에요.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교회가 거룩한 교회인가, 예배에 여러분 파이프 오르간이 울려 져서 화려하고 신령한 모습이 있고, 선교를 많이 해서 교회가 뭐 일을 많이 하고, 프로그램이 좋고, 그런 게 아니에요.
3. 다른 교회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교회라고 생각하는 교회가 거룩한 교회이다. 천주교는 로마카토릭이고, 개혁주의 교회는 홀리카토릭이다.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라는 말은 홀리카토릭을 믿는다는 말이다. 고린도 교회에는 헬라사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너무나 많이 왜곡 했다.
아니면은 교회 안에서 유행가도 부르지 말고 그냥 거룩 거룩 하는 교회가 거룩한 교회인가 아니에요. 교회는요 다른 교회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의 교회라고 생각하는 그런 교회가 거룩한 교회에요. 오늘도 여러분 2절에 보면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그러면서 또 뭐라는 가 하면은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는요 교회가 아니에요. 지교회에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르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가 카토릭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카토릭 하면은 천주교가 카토릭 인줄 아는데 너무 무식한 소리에요, 천주교는 로마카토릭이에요.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한 보편적인 교회라는 말이고, 우리 개혁주의 교회는 카토릭이에요. 홀리카토릭이에요.
여러분들이 사도신경에 신앙 고백 하잖아요, 거룩한 공회라는 말은 홀리카토릭을 믿는다 이런 말이에요. 그 말은 뭔가 하면은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만이 교회가 아니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의 모임이 거룩한 보편적인 교회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도 눈에 보이는 신앙 생활 하겠다 이런 신앙 고백이에요. 여러분 이런 관점에서 보면은 우리 한국 교회가 얼마나 거룩성을 상실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예전에는 여러분 한 70년대 60년대만 해도요 식당에 가서 성구가 있으면은 아 교회 다니느냐고, 이러면은 뭔가 하면은 아 손님도 교회 다니세요? 그러면서 마치 어릴 때 헤어졌든 형제 만나듯이 아이구 그런 거냐고, 참 반갑다고, 반찬 하나 두 주었어요.
여러분 어디에 가서 제가 목사 된 초창기만 해도요, 지방에는 어디에 가서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 모시고 왔습니다 이러면 뭐라는 줄 아세요, 목사님 밥값은 안 받고, 교인들의 밥값만 받았어요, 이랬든 교회에요. 그런데 요즘은 뭐라 그래요, 당신도 교회 다니느냐고 아이구 우리 교회 오세요. 거룩성 아닙니다. 옛날에 어디에 여러분 다른 교회 다니는 교인보고 우리 교회 오라 이런 소리 했어요? 신앙 생활 잘하세요 너무 반가워요 이랬다고요, 이게 거룩한 교회에요. 여러분들이 이 거룩성을 한국 교회가 일어 버린 거에요. 이 사람이 진짜 거룩한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교회 와서 수양회 갔을 때도 나무 밑에 앉아 가지고 남들은 다 뭐 이러는데, 눈감고 가만히 있는 이런 게 거룩이 아니에요.
교회에서 어떻게 세상 노래 불러? 그런 것 아니에요. 그 사람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은 상처가 되고 부담이 되는 그런 사람들도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교회 고린도 교회에는 이런 모습이 없었던가, 지난 주일 여러분 들에게 말씀을 드린 대로 헬라사상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너무나 많이 왜곡을 한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에게 교회와 성령을 반듯이 한번 더 들어라 하는 이유는 성령을 한국의 도깨비 신앙으로 바꾼 거에요. 교회가 뭔지도 모르는 거에요 사실은, 여러분 그 문제가 5절과 6절에 있어요.
4.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많이 일으킨 것이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문제이다. 지식을 얻으면 이 고통에서 해방이 된다고, 이게 헬라사에 이분법이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지식이라 생각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은사들을 예를 들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5절을 한번 보세요.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자 다시 저를 보세요, 영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가 분명한데, 우리나라 말에는 주어 동사 목적어 주어도 많이 생략되어 버리고, 접속사라든지 조사라든지 이런 것이 불명확해요. 그래서 의미가 참 많이 왜곡이 됩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읽으면은 마치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이 풍족함으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었다 이렇게 느껴져요. 그런데 이 말에 원래의 의미는 여러분 오늘 이 성경은 한국말로 쓰여 진 것이 아니에요 원래는, 코인의 헬라어라는 헬라어로 쓰여 졌는데, 그 헬라어는 지금 그리스에서 쓰는 히랍어 헬라어 하고는 달라요, 사어에요 죽은 언어에요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안 해요.
그래서 이 저는 왜 이 사어가 되었을까, 언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변형이 일어나거든요, 이북하고 우리하고 의미가 많이 다르잖아요. 그런데 언어가 딱 죽으면은 의미가 고정 되어져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의 진리인 말씀이라고 저는 봐요. 이 말씀의 의미를 알려면은 먼저 여러분들이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알아야 되는데, 이제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많이 일으킨 것이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문제에요. 그래서 뒤에 은사의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이 은사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하면은 지난주일 말씀 드린 대로 헬라 사상 이분법적으로 생각을 했든 거에요.
헬라의 사상은 뭐라고 그랬어요 내가, 영원한 것이 유한한 육체에 갇혀 있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이 있고 고통이 있는데, 지식을 얻으면은 이 고통에서 해방이 된다고, 이게 헬라사에 이분법이에요. 그래서 헬라인들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지식이에요, 그노시스 라고 하는데 이 지식은 그래서 헬라철학에 보면은 철학이나 수사학이 발달을 하는 거에요. 왜냐하면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그런데 이러한 사상이 성령의 은사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 가지고, 말과 지식의 은사를 굉장히 중요한 은사로 여겼고, 그 은사가 자신이 구원받은 정도로 삼았다고요. 내가 이렇게 자유 하게 된 것, 열광주의로 살고, 금욕주의로 사는 것은 성령의 은사 때문임으로 말하면서 이 은사를 증거로 삼았다고요.
그러니까 구원과 은사를 분리해서 생각했든 거에요 이분법적으로, 그러다 보니까 서로 은사 자랑을 많이 했든 거에요. 고린도전서 12장에 가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은 여러분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를 보면서 방언의 은사, 지식의 은사, 예언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한번 이런 이야기하면서 부흥사들이 은사는 열 몇 가지, 크게는 서른 몇 가지가 있는데 여러분들이 은사 받기를 기도하시고 노력하세요. 성경에 무식한 부흥사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고린도전서의 기록되어져 있는 그 은사들은 고린도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은사들을 예를 들어서 말하고 있는 거에요. 특히 방언의 은사, 이 방언의 은사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일으켰어요.
5.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이 풍족함은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신 것을 성령님이 너희 속에 확증을 지어 줄 때에 지식과 모든 은사가 풍요롭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은 성령의 은사와 하나님의 구원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방언의 은사는 자기에게 유익하지만 교회에는 아무런 득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바울이. 그런데 우리 한국에도 보면은 이 고린도 와 같이 성령의 은사를 구원받은 증거로 삼아서 방언을 하면은 구원받은 자라고 생각하고, 방언을 하면은 자기가 마치 더 신앙이 영적으로 깊은 경지에 도달한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오늘 5절과 6절에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나타나는 거에요. 또 우리 목사님은 성경 100독 했대, 저 권사님은 성경 많이 알아, 전부 고린도 와 같은 상황이에요. 그러면 이 말씀은 뭐냐 하면은 이런 말이에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이 풍족함은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었다.
너희 중에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게 되었다 이 말은 여기에 이제 행간에 생략된 말들이 있어요. 내가 고린도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을 해줄 때 복음을 전해 줄 때 성령님께서 너희 심장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증시켜 주었다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이것은 개혁주의 교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 신학에도 나와요. 성령의 내적 증거 이런다고요, 다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은 목사님이 여러분들에게 거룩 이라는 것은 신령한 게 아닙니다, 거룩 이라는 것은 세상과 분리되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하고 기질이 맞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하고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고, 말이 통하지 않고, 손해가 되는 사람도 그 사람 자체로 감사한 삶을 사는 것 아닌가, 이런 말씀을 할 때, 여러분들이 그 말씀이 진리로 확증되게 여러분들 속에 역사하는 이는 성령님이에요.
심장에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장도 하트를 마음을 이쪽(가슴)으로 가져가니까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은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흥분이 되는 것을 성령의 역사하심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런데 서양에서는 심장을 어디로 가느냐 하면은 머리로 생각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풀어 설명해 줄 때에 그 말씀이 진리라고 여러분들 생각 속에 확증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이신 것을 성령님이 너희 속에 확증을 지어 줄 그때에 너희들의 지식과 모든 은사가 풍요롭게 되었다, 이런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은 성령의 은사와 하나님의 구원을 분리하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로 되는데 헬라어에 은혜라는 말은 카리스라는 말이에요. 성령의 은사라는 말은 카리스마라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카리스마 이러면은 뭔가 이렇게 권위 있는 아우라를 카리스마라는데 원래 헬라어에 카리스마는 은사를 말하는 거에요. 영어로는 기프트 선물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면은 카리스와 카리스마는 뭐냐 하면은 카리스 헬라어에 마라는 단어 접미어가 붙으면은 추상적인 것이 구체화 되는 것을 말해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구체화 되어서 나타나는 것이 은사다 이 말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의역으로 좀 쉽게 이야기를 하면은 여러분들이 바울이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6. 은혜를 성령이 생각 속에 내적인 정도로 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그 은혜가 구체적으로 선물로 여겨 진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주신 은혜가 은사가 되어져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고 나에게 주신 그 선물을 따라서 섬기게 하여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한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의 은혜를 말할 때에 성령님이 여러분들 생각 속에 그것이 진리라고 받아 드리는 순간 그 은혜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줄 아는 거에요. 이 사람이 교회가 교회다워 지려면은 헬라 사상을 배격하려면은 여러분들 우리 한국에 도깨비 신앙 천지신명을 제거하게 되면은 어떤 생각을 해야 되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구원 받을 때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져요. 옛날에는 그런 신앙이었어요. 그래서 돈이 있는 사람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준 선물로 생각하는 거에요. 건강이 있는 사람은 건강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는 거에요.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로 나에게 준 선물로 생각해요. 그 은혜가 구체적으로 지식으로 나에게 주어졌다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주신 그 은사를 따라서 사용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 가보면은 하나님이 그 뜻대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어 준 것이고, 은사 자체가 선물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내가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요구하면 웃기는 거잖아요. 성령의 은사를 하나님 앞에 달라고 하면 웃기는 거에요, 선물 달라는 것하고 같은 거에요. 은혜를 여러분들이 그 말씀을 성령이 여러분들 생각 속에 내적인 정도로 하게 되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그 은혜가 구체적으로 선물로 여겨 지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들의 이 은혜로 많은 가치 평가가 달라지는 거에요. 우리 한국은 자본주의 체계 속에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한국은 무엇이 제일 귀하냐 하면은 돈이 제일 귀한 거에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 낸 가치관이에요. 그래서 교회도 많은 교인들이 돈이 있어야 돼, 이런 것은요 지금 5절과 6절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대에서 나오는 거에요. 혹시 여러분들이 목사님들이 예수 열심히 믿어 가지고 돈도 많이 가지고 권력도 많이 가지고 봉사도 열심히 해, 잘못 말하는 거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슈퍼맨으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여러분들 각자 각자에게 주신 그 은혜가 은사가 되어져서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아니하고 나에게 주신 그 선물을 따라서 섬기게 하신다고요. 그래서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 다니면은 참 편하다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말씀에 의거한 목회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러잖아요, 50대에 있는 교인들에게 시간 많이 내라 안 해요. 열심히 일해서 돈 버세요. 은퇴한 사람들에게 헌금 많이 하라 안 해요. 시간을 가지고 봉사하라고요. 이제는 노년이 UN에서 정리가 80이니까 80 넘은 사람들에게 시간도 내고 돈도 내어서 헌금 하라 안 하고요, 자리만 지켜 주어도 고맙다 그래요. 이런 교회가 거룩한 교회에요. 회사는 슈퍼맨이 와야 되요. 무엇이든지 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요. 그러면 교회는 주식 회사가 되는 거에요. 여러분 젊은 시절에 경제활동이 왕성할 때에 그 헌금을 하는 것이나, 모든 활동을 이제 다 접고 그저 내 자리만 지키는 것이나, 똑 같이 보여야 되요.
7.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그래도 너희 교회 예수 믿는다는 이유하나 때문에 내가 너희를 생각하면 감사하다, 하나님의 은사가 오히려 교회를 헤치는 일로 나타나지만은 재림의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너희들과 교회를 견고하게 할 것이다.
아마 다른 교회보다 우리 교회 이런 모습이 많아요. 왜 이 말씀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주어지면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아서 가지지 못한 것을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아니하고,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도 서로 인정하고 격려해요. 고린도교회는 헬라의 사상이 그들 속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은사를 구분해 가지고 서로 비교하고 자랑하고, 또 그 은사들 중에서도 특별히 말에 대한 것이나 지식의 은사는 더 귀한 것으로 여기고, 거룩성을 잃어버린 거에요.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그래도 너희 교회 예수 믿는다는 이유하나 때문에 내가 너희를 생각하면 감사하다.
수요일 날도 여러분들이 못 오시면 팟방을 통해서라도 들으세요, 수요에 안 들으니까 신앙의 왜곡이 일어나는 거에요, 수요일 날 로마서에 제가 이야기 했잖아요. 로마 교회와 바울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교회에요. 그런데 바울은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너희를 간절히 보기를 원한다는 거에요. 태어날 때에 각각 다른데 입양을 가 가지고 형제를 그리워하듯이 그 애끓는 마음으로 교회를 보기를 원한다는 거에요, 그게 거룩 이에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은 예수 믿는 그것 하나만 보면은 죽었다가 살아나는 동생같이 여겨 지는 마음, 그런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이제는 여러분들의 신앙의 목표나 교회의 목표가 달라져야 되요.
그런데 그 뒤에 보면은 7절과 8절 보면은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굉장히 많은 교회에요. 어쩌면은 강남에 있는 교회하고 같은 거에요. 학벌도 좋고, 사회적인 위치도 있고, 돈도 있고, 이런 사람들이 많은 교회에요. 그래서 그 은사가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풍성 해지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하는데 문제가 있는 그 은사가 예수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풍성한 그대로 있기를 바라면서 하는 소리가 뭔가 하면은 예수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주의 그날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들이 지금 복음에 대한 이해가 좀 결여되어도 아직까지 헬라의 사상에 여러분들이 벗어나지 못해서 너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풍성한 은사가 오히려 교회를 헤치는 일로 나타나지만은 재림의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너희들과 교회를 견고하게 할 거다. 너희들이 책망할 것이 없는 견고함으로 나타날 거다. 이 말은 뭐에요, 지금은 책망 받을 것인데 책망 받지 않도록 해라. 소망을 저버리지 않는 거에요. 자 여러분들이 이 말씀도 바울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어졌는가, 9절 때문이에요. 9절을 보세요.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8. 예수 그리스도 주로 더불어 교재 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케 하는 고린도 교회는 바울과 교재가 있었다, 하나님의 교재가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해서 성숙 시켜 져 갈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보니까 저것은 안 고쳐 질 것 같아, 평생 헬라 세계에서 살아왔는데 어떻게 히브리적 사고로 돌아와서 예수님의 그 구원과 은사를 이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살아갈까,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너희가 책망 받지 않게 없는 자로 끝까지 하나님 견고하리라고 하는데 자기가 생각할 때에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그런데 걱정이 많아, 그래서 9절을 말씀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목사님이 설교에서 예화를 드는 예는요 정말 여러분들이 그 예화 들은 것 가지고 그 사람을 조롱하고 이러면은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전체의 신앙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는 거에요.
그리고 옛날에는 자신의 삶과 어떤 것들이 설교의 예화에 들어가는 것을 굉장히 영광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뭐 그런 이야기도 하는데 이번 주에도 우리 송정아 집사님이 지금 항암 치료 중에 있잖아요, 제가 그날 이렇게 생각 할 때에 집사님도 생각나고, 김운희 집사님도 생각나고, 그래서 카톡을 보니까 김운희 집사님하고 안 집사님은 없어 카톡이 아마 나간 것 같아, 그래서 송정아 집사님 있어서 내가 몇 자 문자를 보냈다고, 그러니까 송정아 집사님이 오기를 뭔가 하면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이 이리도 정확하시네요. 송정아 집사님이 잘 이기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좀 디프레이션에 빠졌든 것 같아.
그래서 목사님의 문자가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시는 것으로 새 힘을 얻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문자가 오더라고요, 자 여러분 보세요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육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에게는 또 다른 걱정이 있거든요, 목사가 아무리 거룩해 지려고 해도, 쓸데 없는 말하고, 이러면은 화도 나고 기분도 나쁘거든요. 여러분들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저끼리 여러분들 이야기를 하면은 교회에서 속이 상하거든요, 그럴 때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되는가, 바울이 이렇게 하는 거에요.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주로 더불어 교재 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눈으로 보는 거에요.
내가 지금 모든 일들을 뭐로 보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그 약속의 변함이 없으심이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주심에 변함이 없는 그 하나님의 여호와의 신실함으로 바라보면은 내가 생각할 때에는 희망이 없는 고린도 교회도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교회로 재림의 그날까지 견고 해질 것이다. 이 믿음이 생기는 거에요. 여러분 그래서 여기에 중요한 것은 고린도 교회가 그렇게 문제가 많으면서도 고린도 교회의 큰 장점 중의 하나가 갈라디아 교회는 인사조차도 없어요 바울이. 9절에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케 하는 고린도 교회는 바울과 교재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네가 담임 목사냐, 네가 목사 자격이 있냐, 나는 저 목사가 더 좋다, 뭐 은사 자랑하고 이러는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나오면은 바울에게 편지를 보내어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어떻게 해야 되는데, 시집가지 않은 처녀는 시집을 가야 되는가, 그냥 살아도 되는가, 신앙의 모든 문제를 바울에게 편지를 통해서 물어요. 하나님과 교제가 있다는 말이에요. 그 하나님의 교재가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통해서 성숙 시켜져 갈 것을 기대하는 거에요. 여러분들에게 제가 이야기 하잖아요, 기도할 때에 자꾸 자기 주장하지 말라 하잖아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되요. 하나님 주시옵소서 이룰 줄로 믿습니다, 절대로 하나님과 교제가 없어요. 성숙이 일어나지 안 해요, 물어야 되요,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자신과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교인되게 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그 묻는 기도 속에서 성숙되어져 가요.
9.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은 그리스도와 교제 속에서 신실하심의 믿음이 성장해 가는 것이다.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견고히 되게 하신다. 교회는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예수의 재림의 그날까지 견고해 져 갈 것이다.
우리 교회도요 12년을 목회 하면서 구역예배에서 설교 말씀을 가지고 나눈 사람하고, 그냥 예배만 드린 사람은 천지 차이에요, 무엇에 차이에요 거룩성에서. 오늘도 여러분 정말 그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은 그리스도와 교제 속에서 신실하심의 믿음이 성장해 가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세상과 나는 다른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자기에게 좋은 말 해주고, 자기하고 성향이 같으면은 좋고 이런데, 예수 믿고 난 뒤에 원수도 친구로 변하는 거룩이 여러분들에게 있는가, 이전에 그렇게도 좋았든 것이 이제는 값없이 여겨 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가장 귀한 것임을 알게 되어졌는가, 세상에 제가 이야기 자주 하잖아요,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있는 거에요.
여호와라는 말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끝이 같다는 거에요.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어떤 반응에 따라서 하나님은 변하는 것이 아닌 거에요. 그래서 그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사람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견고하게 되는 거에요. 교회는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예수의 재림의 그날까지 견고해 져 갈 거에요. 우리 한국 교회가 왜 옆에 교회가 경쟁의 대상이 됩니까, 왜 교회 다닌다 하며 우리 교회 오라고, 자기 교회 자랑하는 것이 전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거룩성의 상실이고, 번영신학과 성장신학과 자본주의가 복음을 잠식한 결과에요. 오늘도 여러분 정말 성령님께서 여러분들 속에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생각에 진리로 확정 되어져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알아서 그 선물을 비교하지 않고, 내 모습 이대로 잘 섬겨서 경제 활동이 많으면 헌금 많이 하세요. 은퇴하셨으면 시간을 내서 섬기세요.
이제 은퇴도 하고 경제 활동도 접어서 그저 내 몸하나 간수하기 힘들거든 자기 자리 지키세요.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덜 귀하고 더 귀한 게 없어요, 그게 교회입니다, 그게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이전에 좋든 것이 이제는 값없이 되어야 되요. 원수도 친구도 변하여서 친구가 되어져요. 그것은 십자가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나를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 생각 속에 확정 되어져야 되요. 그저 우리 교회가 정말 여러분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져서 홀리카토릭 독수리비상에 우리 교회의 비전선언문 있지요.
수많은 교회 가운데 하나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주목하여 보는 교회, 주님이 주목하면은 교회가 커지는가 아니에요, 세상과 뭔가 좀 다른 교회, 옆의 교회를 경쟁의 대상으로 않고, 섬김의 대상으로 삼고, 여러분들이 이제는 행복은 그 속에서 오는 거에요. 이전에 좋든 것이 값없이 되어야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행복이 옵니다. 죄인도 원수도 변하여 친구가 될 때에 그 사람을 누가 불행하게 하겠어요. 그것을 누가하여, 하나님과 교제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 신실하심만이 그러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갈 것이지요. 교회의 연조가 더해 갈수록 신앙의 연조가 더해 갈수록 거룩 해져 가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아들마저 신의 응식으로 바쳤든 우상 몰렉에게 드리는 예물과 같은 헌금이 되지 아니하고,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을 내 심장에 성령이 확정시켜 주어서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아서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아름답게 사용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아니하고 가장 행복한 생애를 살아가기 위하여 신앙으로 드리는 하나님의 귀한 신앙의 고백의 예물을 받아 주시고, 성도들이 이 헌금 가지고 자녀에게 학원 하나 더 보내면은 더 좋은 대학 갈 것 같고, 그러면 자녀의 미래가 보장될 것 같고, 이 헌금을 아껴 두면은 내 내일의 삶이 더 보장될 것 같은 인간의 생각을 광야 40년 동안 하루도 그치지 아니하고, 만나를 내리게 하신 그 신실하신 하나님, 예수님 속에서 계시되는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 드려서 드린 예물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가 있는 교회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 노릇 해 주심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경험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되어져서 주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여호와의 신실하심으로 더욱 견고해 져 가기를 원합니다. 병석에 있거나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때 우리가 믿음이 있다 하지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입니다.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그 문제의 해답이신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지 않고, 주님이 주신 여건 안에서 가장 행복한 생애를 살다, 주님 품에 안기는 믿음의 동지들이 되게 하시고, 신앙인이 되도록 종이 드린 말씀과 종이 드린 기도가 성령의 내적 증거로 이들의 생각이 확정시켜 주기를 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고, 모든 사람의 가치판단도 조그마한 자기의 경험을 가지고 판단함으로 4분 5분 분열의 공멸해 가는 세상을 하나님의 피조물 자리로 돌리고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돌리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그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름으로 말미암아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자유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한 몸 되게 하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세상과 같이 계모임과 같이 동창회의 모임과 같이 친밀한 것이 거룩함도 아니오, 신령한 종교적인 것도 거룩함이 아니오, 나와 기질이 다르고 만나면은 부담이 되고, 몇 마디 말 들으면은 가슴을 아프게 하는 그 사람조차도 존재함이 감사하게 여겨 지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과 재림의 그날까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나갈 것을 믿는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새찬송가 579장 - 어머니의넓은사랑 [다니엘 새찬송가 전집 12]
'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자가의 도(1)(하나님 마음 어버이 마음)(고전1:18-25)주일낮예배 설교문 (0) | 2018.05.18 |
---|---|
보혈의 능력(고린도전서 1장 10절-17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0) | 2018.05.11 |
고린도 교회(사도행전 18장 1-17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0) | 2018.04.26 |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17)(마가복음 1장 15절)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8.04.20 |
예수님께서 이루신 하나님 나라(16)주일 예배 설교문 (0) | 2018.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