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웅담임목사주일설교원고

보혈의 능력(고린도전서 1장 10절-17절)주일 낮 예배 설교문

차주희 2018. 5. 11. 17:50




담임목사 김종웅



보혈의 능력

고린도전서 1 10-17

2018 5 6일 주일 낮 예배

                                                                                                                                                  No. 365

10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14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멘

 

카톨릭 이라는 말은 보편적 교회 다른 말로 하면은 교회는 똑같다 이런 말이다. 예수님 안에서 똑 같은 교회가 되어야 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고 성숙된 말이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하게 한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왜 교회는 교회끼리 싸우느냐는 말이에요.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에게 받는 많은 질문이 뭐냐 하면은 목사님 교회는 왜 그렇게 교파가 많아요, 라는 말입니다. 잘못 믿어서 그래요.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래요. 복음을 알면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를 시작하면은 우리가 하는 신앙의 고백 사도신경에 보면은 거룩한 공회 이러잖아요, 그 거룩한 공회는 영어로 홀리카톨릭 이럽니다. 우리 많은 기독교인들이 천주교는 카톨릭이고, 우리 기독교는 교회고 이런 줄 알아요. 신앙의 고백은 날마다 우리가 카톨릭 이라고 해 놔 놓고, 카톨릭 이라는 말은 보편적 교회 다른 말로 하면은 교회는 똑같다 이런 말입니다.

 

틀리는 것이 아니다, 온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다 같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 천주교는 여러분들이 카톨릭 이라고 할 때에 왜 카톨릭 이냐 하면은 천주교는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해서 다 같은 교회에요. 그래서 천주교는 자기가 이사를 가면은 이사간 데의 성당 옮기잖아요. 천주교는 사회정의구현 같은 데모하는 신앙도 있는가 하면은, 아주 보수적인 신앙도 있고, 또 선교의 미션영화를 보면은 그렇게 열심인 신앙도 있고 다양한 신앙이 있는데, 예수님 안에서 똑 같은 교회가 되어야 되요.

 

1. 교인이 교인다워 지자는 것은, 신앙 생활에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복된 신앙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형제들이라 한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해라.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부끄러워야 된다.

 

우리 기독교는 예전에는 예수님 안에서 똑 같은 교회였어요. 그래서 제가 어릴 때에 아마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교인들이 어느 교회 좋다 이러면은 목사님들이 뭐라는 가 하면은 교인들에게 그런 소리하면 안 돼, 다 예수님 교회는 다 좋은 거야 이랬다고요, 어느 목사님이 훌륭해 이러면은 장로님들이 뭐라고 했는가 하면은 목사님들은 다 훌륭하고 좋은 거지 좋은 목사 안 좋은 목사 없어, 이게 홀리카톨릭 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도를 할 때에 교회 자랑하라 해요. 목사님 자랑하라 해요. 사탄의 역사인 줄 알아야 되요. 이런 것이 교회가 브랜드화된 자본주의화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에요.

 

그래서 교회끼리 싸우고, 좋은 교회, 안 좋은 교회 있고, 좋은 목사, 안 좋은 목사 있고, 좋은 장로 안 좋은 장로, 있는 겁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함께 묵상 해 가는가, 교회가 교회다워 지자는 거에요. 교인이 교인다워 지자는 거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신앙 생활에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복된 신앙 생활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화다워 진다고 하니까 교회가 홀리 신령해야 되는데 그런 게 아니에요. 홀리한 것이 뭐냐, 지난 주일도 말씀했지요, 구별된다는 거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쭉 묵상해 가면서 정말 교회 안에서는 더 좋은 사람, 덜 좋은 사람도 없고, 또 우리 교회는 좋고, 다른 교회는 나쁘고 이런 말 하면 안 되요.

 

여러분 분명히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있지만은, 나쁜 사람은 없어요. 정말 여러분들이 이런 변화가 우리 속에 있어서, 이제는 세상으로부터 왜 교회는 그래 교파가 많아, 왜 교회는 교회끼리 다투어, 이런 말은 최소 한도로 우리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에게는 나오지 않는 그런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어야 되요. 왜 그래 되어야 되는가 이제 그런 부분들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먼저 10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자 여기에 수요일 날 되면은 참 길게 여러분들에게 설명을 할 수 있는데 주일날은 늘 시간이 제한이 와서 답답해요.

 

여기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형제들아 라고 하는 것도요 굉장한 말이에요.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형제들이라 그래요.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아셔야 되거든요. 다시 말하면 나보고 목사 자격 없어 하는 사람도 형제들아 이런다고요, 형제들아 하면서 뭐라는 가 하면은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해라.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고 성숙된 말이에요. 앞으로 교회에서 어느 교회는 좋고 어는 교회는 나쁘고 이러면 안 되요. 그 교회의 나쁜 점은 있어요, 그러나 교회는 나쁘지 안 해요.

 

어느 장로님은 좋고 어느 장로님은 나쁘고 이러거든 신앙이 어리구나, 좀 옆의 성숙된 사람이 교회는 그런 말하면 안 되지, 이런 교회가 되어져야 되요. 이게 서로 격려라는 거에요. 같은 말 해야 되요. 앞으로 우리 교회에 좀 그랬으면 싶어요,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부끄러워야 되요.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막 이야기하거든요, 여러분 우리나라만 해도 그래요, 좌파 우파가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목사님이 여러분 우파 좌파 안 해요. 목사님은 좌파도 성경으로 비판해야 되고요, 우파도 비판해야 되고, 저보고 우리 부목사 출신이 페이스북에 좌파 목사라고 올렸대요, 저는 그 사람도 내 새끼고요, 어리구나 이래 보면 되어져요. 여러분 얼마나 웃기는 거에요 애를 앉혀 놔 놓고 아빠 좋니 엄마 좋니 ㅎ ㅎ 참 웃기는 부모의 현명한 대답을 하는 아이들이 엄마 아빠 다 좋아 ㅎ ㅎ 여러분 정말 같은 말을 해야 되요.

 

2.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는 진영 논리가 아니라, 공동체를 다양하고 풍성히 하는 능력이 복음이다. 복음을 받아 드린 글로에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글로에라는 사람은 유력한 자며,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 부자다.

 

그리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정말 교화다운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하나가 되는 거에요. 좌파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우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하나가 되는 진영 논리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그 공동체를 더 다양하고 풍성 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그 능력이 복음이에요. 예수님이 우리 속에 오신 이유가 그런데 있는 거에요.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11절에 보면은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글로에라는 사람은 유력한 자에요, 노예를 거느리고 있는 부자에요, 고린도 교회에. 11장에 가보면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는데 집 편 이라고 할 때 이 집은 글로에의 집에 있는 노예를 말해요.

 

그런데 글로에의 집에 있는 노예는 글로에가 자유를 선포했는데 스스로 이제 노예가 된 사람이에요. 왜 그 집에 속해 있어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기 때문에 이제는 신분에 의해서 매인 자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노예가 된 것, 참 여러분 이게 복음의 능력이에요. 사회에는 노예 제도가 존재 했지마는 복음을 받아 드린 글로에는 노예 자기 노예들에게 다 자유를 주었어요. 그런데 스스로 노예가 된 자가 소식이 오는 게 뭐냐 하면은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거에요, 어떤 분쟁인가, 12절에 말하기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속한다는 말은 뭐냐 하면은 나중에 또 12장에 가서 여러분들에게 12장에 가서 설명 하겠지만은 그리스도 속으로 이 말은 그리스도라는 통장에 내가 예치 되어졌다, 소속 되었다, 내가 그의 소유물이 되었다, 이런 말인데 바울에게 줄 선다, 아볼로에게 줄 선다, 게바에게 줄 선다, 그리스도에게 줄 선다, 이런 줄 서는 것은 어린 신앙 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우리는 칼빈주의다 우리는 알미니안주의다, 어린 신앙이에요. 또 이런 게 왜 왔는가 하는 것도 강의 시간이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다 하겠지만은 넘어갈 수 밖에 없어요. 기독교의 복음이 2천년 사이에 많은 변형이 와요. 그래서 우리 한국에도 보면 신학교에 미국 갔다 오면은 미국에는 어느 신학교 출신 학교별로 출신 별로 나뉘어 지고요, 유럽 쪽으로 가면 학파 별로 나뉘어져요.

 

이런 것들이 교회 안에 영향을 주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이럴 때에 왜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가 하면은요 복음의 왜곡은 항상 사회적인 통념이나 우리의 경험이나 인간에 의해서 변형이 일어나기 때문에 교회가 이렇다 하는 것을 아셔야 되요.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가, 제가 고린도전서를 하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지만은 게바파는요 시오니즘 유대주의가 강한 신앙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에게는 금욕주의로 나와요. 그래서 우상에게 바쳐 진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된다고 하고, 심지어는 부부 관계도 가져서는 안 된다 하는 금욕주의 자들, 뒤에 이제 이런 부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고요.

 

그리고 그리스도 파라는 말은 열광주의적 자유주의자인데 이 사람들은 헬라 사상에 영향을 입어서 기독교의 영성을 왜곡한 자인데요, 참 말씀 드리기 뭣하지만은 뒤에 이제 고린도전서에 나오는데 계모를 범하고도요 교회에서 자랑을 하는 거에요, 자기는 자유 하게 된 자라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어떤 신앙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굉장한 삶의 변화가 있어요. 항상 복음의 기초의 위에 서야 되요. 지금도 여러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웃기는가 하면은 동성연애자들 커밍아웃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랑스럽게 하잖아요. 그런 것들이 뭐냐 하면은 인권에 대한 복음적인 이해가 결여된 데에서 나오는 잘못된 거에요.

 

3.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결코 그리스도는 나뉘어 진 게 아니다,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한다. 내가 세례를 주었으면은 얼마나 내 줄 많이 섰겠느냐, 이게 성령이 있는 마음이다.

 

여러분들이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런 것에 대한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운 줄 안다고, 복음을 제대로 알게 되면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남을 비하하고 욕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하는 것을 알게 되어져요. 내가 누구를 존경하고 누구를 이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린 신앙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어져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칼빈주의라는 말은 안 쓰잖아요. 성경으로 칼빈을 비판해야지, 왜 칼빈을 가지고 성경을 재단해야 됩니까? 저는 우리 부교역 자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나를 비판해라, 그래서 더 성경적이 돼라, 그러나 네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적 신앙이나 통념으로 비판하지 말라, 이러는데 조그마한 신앙을 가지고 비판을 할 때에 그 답하면 뭐합니까 어린이에게 뭐 이야기 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에 이 고린도 교회는 헬라의 영향으로 굉장한 그런 파벌이 생긴 겁니다, 이런 파벌에 대해서 복음 안에 있는 바울은 보세요 1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3가지 질문을 그들에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결코 그리스도는 나뉘어 진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가 지금 좌파 우파 대한민국 한 민족이 뭐 좌파 우파로 나뉘어졌어요. 그러면서 바울은 보세요 자기를 지지하는 바울 파를 혼내요, 나하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욕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언제 바울 파 너희들은 나를 지지한다고 하는데 내가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 못박혔느냐?

 

내가 내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느냐, 여러분 앞으로 자기를 지지하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 되게 하는 사람은 성숙된 사람이고요, 그저 자기가 지지하는 사람 편들어 주어 가지고 그 시각으로 모든 것을 보거든 아직 어리구나, 이래 보면 되요. 요즘 우리나라도 모든 것을 뭐 좌파로 이래 보면은 그런 사람도 저놈은 없어져야 된다 댓글에 이런 게 많던데, 그것은요 그런 사람도 있어야 되요, 그런데 어린 게 당 대표가 되고 이러니까 나라가 시끄러운 거에요. ㅎ ㅎ ㅎ 우리가 그런 놈은 없어져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요, 어떤 경우에도, 여러분 부모는요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어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면은 성령이 우리 속에 임하면은 능력을 받아서 병 고친다 이것 전부 무당 신앙이에요, 샤마니즘적 신앙이에요. 성령이 임하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봐요, 하나님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보다 더 커요, 형제는 서로 경쟁하고 시기하지만은 부모 눈에는 똑 같아요. 여기 연세 드신 분들은 다 이해 되지만은 젊은 사람은 하나만 놓으니까 이 말이 뭔 말인지 모르는 것 같아 ㅎ ㅎ ㅎ, 부모는요 애먹이고 못난 이놈 때문에 눈 못 감아요. 성경에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에요. 잘나고 의로운 것 그것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요 나같이 못난 놈 때문에 하나님은 아직도 기다리고 기다리세요. 그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되요. 예배가 그런 예배에요.

 

바울은 자기에게 줄 서는 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참 저는 이걸 보면서 야 참 이런 생각이 들어요. 14절에 보세요.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한다. 여러분들은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 나를 지지해 주는 교인들이 많아서 참 이 교회에 잘 왔어요 감사해요 이러는데, 바울은요 뭐라는가 하면은 내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안 준 것을 너무 고맙다, 나에게 줄 서지 안 한 것이 너무나 고맙다고, 내편 들어 준 사람을 안 만드는 게 너무나 고맙다 이래요. 내가 만약에 세례를 주었으면은 얼마나 내 줄 많이 섰겠느냐, 여러분 이게 성령이 있는 마음이에요.

 

4. 서데바나 집 몇 사람에게도 세례를 주었네 그리고는 내가 아무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푼 기억이 없다. 내한테 줄 서지 마라, 예수님에게 속한 자가 되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오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래야 우리 한국 교회가 교회다워져요. 제가 여러분 금년에 우리 교회가 좀 빈자리를 채우자 하고 이래 간다고 하는데 늘 내 마음에 동백의 사람은 비슷한데 우리 교회 오면은 개척 교회 작은 교회들은 더 힘들어 지지 않을까, 솔직히 이런 마음이 있어요. 바울은 내가 세례 안 준 것이 너무 고맙다, 그러면서 그 뒤에 뭐라는가 하면은 15절에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16에 보니까 5년이 지나고 지금 고린도전서 5년 후에 교회가 엉망진창 되었거든요, 바울이 떠나고 난 뒤에, 5년이 지나서 이제 기억이 가물 가물 한데 가만히 보니까 그리스도보와 가이오만 준 게 아니라, 서데바나 집 사람에게도 자기가 세례 준 것이 기억이 난 거에요 그래서 16절을 적은 거에요.

 

내가 서데바나 집 몇 사람에게도 세례를 주었네, 그리고는 내가 아무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푼 기억이 없다. 내한테 줄 서지 마라, 누구에게 줄 서라? 예수님에게 속한 자가 되라, 여러분 요즘 교회 자랑, 목사 자랑, 자본주의 입니다. 우리 교회에 여러분 보세요 성찬식 하면은 우리 부목사님이 분변 분잔 하잖아요, 쉬운 것 아니에요, 내가 우리 교회를 내 편으로 만들고 나에게 줄 서면 안 되잖아요. 성숙된 사람은 더 좋은 사람도 덜 좋은 사람도 없어져요. 교회에 그래야 되요 여러분. 그래야 교회 다워져요. 모든 분쟁을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지금 바울은 복음이 뭔가를 가지고 고쳐 주고 성숙시켜 나가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 뒤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17절 다같이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오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쭉 연구하고 알면은 이런 말이 얼마나 감사한 줄 알게 되어져요. 뒤에 이제 고린도후서나 이런데 가면 바울이요 피눈물 토하면서 하는 소리가 뭔가 하면은 사람들이 바울의 글에는 힘이 있으나 말은 어눌하다, 바울이 말을 참 잘못했어요, 글도 대필로 하고 이랬다고, 그래 자기의 가장 큰 약점을 아볼로 파는 파고들어서 바울에게 공격을 했든 거에요.

 

5. 에베소에서 언변과 지식에 능통해서 브리스길라와 아볼로는 말이 청산유수, 그가 말하는 것은 전부“시”다. 바울이 그래 안 한다는 것이다, 왜 십자가가 헛되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원래의 의미가 훼손이 될까 봐. 십자가의 그 복음이 여러분들이 삶의 핵심이 되어야 된다.

 

아볼로는 사도행전 18장에 가보면은 언변과 지식에 능통한 자다 이래요. 에베소에서 언변과 지식에 능통해서 브리스길라와 아볼로부터 성령 세례를 알고는 그가 고린도에 와 가지고 자연스럽게 그는 말이요 청산유수고, 그가 말하는 것은 전부 야 목사님들 설교도 보면은 어떤 분 있지요, 말 자체가 시와 같은 말, 또 어떤 분은요 만담과 같이 그저 예배 시간에 교인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바울이 그래 안 한다는 거에요. 왜 십자가가 헛되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십자가가 헛되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십자가에 알맹이가 비어져 버릴까 봐, 이런 말인데 이 말은 여러분들에게 말한다면은 십자가의 원래의 의미가 훼손이 될까 봐, 내가 말하는 것이 시와 같이 말하고 멋있게 말하면은 내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게 되면은 내가 하는 말 속에 있는 십자가의 의미를 받아 드리지 못할까 봐, 자기는 그래 안 한다는 거에요.

 

여러분 사람들 보면 이런 사람 많아요, 목요일 날 성경 공부 할 때에도 어떤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 자기는 누가 말하는 것에 따라서 받아 드리고 안 받아 드린다고 해서 내가 저보다 한 10년 연하라서 어려서 그래 이랬다고, 저는요 내가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나하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말을 가지고 이야기 해야 되잖아요, 옳은 말은 옳은 말이고, 아무리 친한 사람도 그른 말은 그른 말이에요. 우리는 그런 왜곡이 너무나 많잖아요. 좀 친한 사람이 말하면은 그 말은 다 맞는 것 같고, 내가 싫은 사람이 말하면 다 틀린 것 같고, 그런 게 인간이에요.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여러분들이 설교의 은혜를 받으려면은 그런데 인간의 한계는 어쩔 수 없잖아요.

 

여러분들이 설교의 은혜를 받으려면은 목사님과 관계가 좋아야 되요. 성숙된 사람은 안 좋아도 돼, ㅎ ㅎ ㅎ 성숙되면 나하고 관계가 안 좋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드려요. 십자가의 알맹이 십자가가 뭐에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영원한 가족이     되게 한 그 그리스도의 그 복음의 내용 그 알맹이가 비어 질까 봐, 자기를 조금도 들어내지 않으려고 했다는 거에요. 세례를 주는 것에서나, 설교를 할 때에 조심했다는 거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자본주의는 브랜드라고, 샤넬을 왜 여러분 몇 백 만원 주고 몇 천 만원 주고 가방 해요, 브랜드 때문이잖아요. 교회는 브랜드가 아니에요. 참 웃기잖아요.

 

서울 대학 총장이 누구인 줄 아는 사람 어디 있어요, 서울 대학이 좋은 거잖아요, 왜 학생이 좋기 때문에, 공부 잘하기 때문에, 뭐 좋은 대학 말 자체도 미안하지만, 저는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다른 교회에서 김종웅 목사 이름은 몰라도 참 교회다운 교회라고 소문이 나는 그러려면은 여러분들이 성숙 되어져야 되요. 십자가의 그 복음이 여러분들이 삶의 핵심이 되어야 되요. 자꾸 열심이나 성과[成果] 모든 것을 가지고 나타내다 보면 그 핵심이 사라지는 거에요. 그러면 분열이 일어나는 거에요. 그래서 다음 18절이 이제 우리 교회 주제 성구인데 다음주에 이제 알맹이가 비어지지 않는 십자가의 도를 18절에서 설명을 하는 거에요. 오늘은 여러분들이 여기까지만 좀 이해했으면 싶어요.

 

6. 미국의 남북 전쟁은 우리와 똑 같은 전쟁이었다. 남부의 리장군이 더 이상 싸우는 것은 미국에 유익이 되지 못한다 항복한다. 리장군에게 보검을 빼앗지도 안 하고, 무장해제도 시키지 안 했다. 철저히 남부의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그래서 전쟁 이후에도 하나의 미국이다.

 

저는 참 미국을 안 좋아하거든요, 절대로 미국을 닮아서는 안 된다고 저는 봐요 우리나라가, 그런데 그들 속에서 또 좋은 점은 좋은 게 있어요, 참 부러운 것 중에 하나가 여러분 미국은 인종 전시장이잖아요, 우리나라는요 뭐 지역 감정이 있다 해도 암만 멀어도요 400키로 이상 잘 떨어진 지역은 없는 것 같아, 뭐 부산이든 광주이든 뭐 대전이든 그런데 미국은요 고향이라고는 나는 캐냐다, 나는 아이스랜드다, 나는 폴란드다 이런다고, 얼굴 색깔도 다 달라요, 말도 틀려요, 그런데 하나의 미국이에요. 이 신비함을 배워야 되요. 그 신비함이 어디서 왔는가, 여러분 그런 미국이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나뉘어서 지금 이렇게 70년 동안 원수로 사는데 미국의 남북 전쟁은 우리와 똑 같은 전쟁이잖아요, 우리의 전쟁보다 더한 전쟁이에요.

 

왜냐하면 먹고 사는 문제의 전쟁이거든요,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가 있으면은 생명 걸잖아요. 노예해방을 여러분들이 인권으로 잘 포장해서 그렇지 내면을 들여다 보세요. 천 팔 백 년대에 산업화로 인하여 미국은 북부 도시들은 왜냐하면 농장이 없잖아요 북부는 기후상, 그래서 공장이 북부 쪽으로 들어온 거에요. 공장은 지어 놓았는데 노동력이 없잖아요. 어디가 쳐다봐야 되요, 남부의 저 목화밭에 수많은 노예들 저거만 해방하면은 우리 공장 노동력이 해방이 된다고, 그래서 북부는 노예해방을 시키려고 했고, 남부에는 그 반대한 게 자기네들 그 노동력 빼앗겨 버리거든요, 그래서 한판 붙은 거에요.

 

제일 처음에 링컨이 대통령이 되니까 7개 주가 독립 선언을 해 버린 거에요. 연방 탈퇴 해 버린 거에요. 나중에는 4개 더해서 11개가 독립 선포 하고 탈퇴했다고, 그래서 한판 붙었거든요. 비슷한 세력이 되다가 점점 북부 쪽이 강해 졌습니다. 남부의 리 장군이 뭐라 했는 줄 아세요, 그 명장이 더 이상 싸우는 것은 미국에 유익이 되지 못한다. 항복한다 이랬어요. 여러분 교회에서 옛날 교회는 그랬어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싫은 것은 싫고, 줄 서는 것은 줄 서고 하지만은 교회에 유익 때문에 참는 거에요. 좌파 우파 대한민국에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내려놓는 거에요. 그렇게 항복한 리 장군에게 북쪽의 그렌트 장군이 우리나라 같으면 뭐해요, 장군의 상징인 보검을 빼앗잖아요, 군복을 벗기잖아요. 무장을 해제 시키잖아요.

 

리 장군에게 그 보검을 빼앗지도 안 하고, 무장해제도 시키지 안 했어요. 철저히 남부의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어요. 그래서 전쟁 이후에도 하나의 미국이 된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에게로 속해야 되는 이유, 십자가의 알맹이가 비어지지 아니 해야 되는 이유는 이런 연합이에요. 이런 연합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구원을 좀더 정확하게 다양한 각도로 알아야 되요. 지난번에 제가 설교할 때도 언제 한번 이야기 했는데 오바마 아 저는요 참 너무나 부러웠어요, 부시 정권이 공화당에서 오바마 민주당으로 넘어갔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언론과 사람들이 오바마에게 당선 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니까 오바마가 뭐라고 그랬어요, 그들이 아마 1월 몇 일인데 1월 몇 일 내가 대통령 취임하기 전까지는 미국의 대통령은 부시 한 사람 밖에 없다 이랬어요.

 

7.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왕국이다. 예수를 믿으면 참 평안해야 되고,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어야 되고, 그게 평화의 왕국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억울하고 내 명예의 손상이 와도 자기 입 더러워지지 뭐, 이런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한번 보세요, 당선 되고 나면은 인수위 해 가지고 점령군 같이 들어가 버리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요 예수 믿는 사람이 많데,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서 하나님 복 받았대, 세상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런 말을. 여러분 참 그러니까 구원이 일어나지 않고, 여러분들의 삶에 평안이 없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의 왕국이에요. 예수를 믿으면 참 평안해야 되고요,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어야 되요, 그게 평화의 왕국이에요. 왜 없는가, 자 여러분들이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해요,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한국의 교인들은 자기를 부인하지를 못해, 옛날에는 다 부인을 했는데,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뭐냐 하면은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다, 내가 경험한 게 전부다, 사회적인 통념으로 성경을 보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 출발 하는 거에요.

 

그래 되면은 오늘도 우리 이호기 장로님 기도할 때 자유라고 참 자유가 일어나요.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살면서 우리 인간은 이런 설교에 지혜의 말로 아니한다는 말은 자기를 들어내려고 수사를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런 말이지요. 다양한 각도에서 복음을 알게 하는 엄청난 연구가 목사에게는 필요해요. 그래서 심리학도 알아야 되요. 인간은 유한한 존재거든요 성경에 의하면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살아 있는 인간에게는 반듯이 욕구가 있어요, 그 욕구가 식욕, 성욕, 그 다음에 여러분 자아성취욕, 심리학자에 따라서 여러 개로 나누는데, 우리에게는 명예욕이라는 게 있잖아요, 자기의 자존심, 드러내려고 하는 왜냐하면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남이 나에게 무슨 소리하면은 기분이 나쁜 거에요. 그걸 가지고 욕하지 말라, 뭐라 하지 말라, 한다고 해서 되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어야 되는데, 여러분 여러분들이 누가 욕하고 이래서 억울하고 내 명예의 손상이 와도 자기 입 더러워지지 뭐 내가 더러워지냐, 이런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에요, 그냥 한마디 듣고는 속이 상해 가지고 밤새 잠 못 자고, 육적인 그리스도인 이에요. 나도 설은 소리 들으면은요 그래서 위궤양도 좀 왔나 나빠 ㅎ ㅎ ㅎ 그런데 십자가 생각하면은요 자기 입 더러워지지 뭐, 자기가 말한다고 해서 내가 그렇나, 정리가 되어져요, 자유함 이런 자유가 있어야 되요 여러분들이.

 

제가 여러분들이 자꾸 가족으로 보라 하잖아요, 똑 같은 말이라도요 가족이 하는 말 때문에 그렇게 속 안 상해요. 세상에 세상에 참 모든 것을 다 준 새끼들이 뭐라 그래요, 엄마 아빠 욕해도 자식이 아버지 욕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잠 못 자면 그것 부모 아니잖아, ㅎ ㅎ 그 마음을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어서 주시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교회에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영의 양식을 먹어서 자꾸 성숙 되어지고 풍만 해지면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은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에요. 세상에 여러분 이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입 가지고 자기 말하는 것 어떻게 다 말리겠어요. 듣는 사람이 성숙되면 되는 거지요. 그러면 교회에 평화가 와요.

 

우리 교회가 여러분 이런 평화에는 오만 말해도 나는 아무 소리 안 하잖아요. 사실이 왜곡되었든 어떤 이야기도 나도 기분 나쁜데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은, 그래 자식이 말하는데 목사가 그러면 안 되지, 참 자유에요. 우리는 그런 욕심을 내려놓자 그런 게 아니에요. 십자가에서 우리가 그런 것을 봐야 되는 거에요. 이런 훈련이 너무 안 되어 있는 것 같아. 여러분 또 우리 소속과 같은 거에요, 소속에 대한 욕구도 굉장히 크거든요, 그래서 왕 따는 사람의 인격을 파탄하려 한다고 욕구 자체에서 파괴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줄 세우려는 거에요, 내편 만들려고 하고, 그래서 챙겨 주고, 편들어 주고, 그게 얼마나 힘 드는 거에요.

 

8. 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하고, 십자가에 우리가 못을 박아야 되는가, 내가 그런 자유 함이 있어야만이 비로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공동체가 세워 지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통해서 평안을 누린다 이게 구원이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이렇게 얽어 매는 것에서 자유 하게 한다.

 

여러분 더 좋은 사람, 덜 좋은 사람, 네 편 내편 없는 그런 자유가 십자가에 못박아 지고 자기를 부인할 때 나타나는 거에요. 그나마 내가 보면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는 좀 그런 성향이 강해요. 그래서 우리 교회가 좀 좋은 거에요. 또 뭐 여러분 물질 욕 이런 것 까지도 다 있는데 다할 수는 없고,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면 여기까지만 하면 다른 종교에요, 다른 종교는 욕심을 없애려 하잖아요, 그래서 수행하잖아요 뭐도 하고. 기독교는요 완성의 종교에요, 한걸음 더 나아가야 되요. 그렇게 되면은 사랑의 공동체가 세워져요. 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하고, 십자가에 우리가 못을 박아야 되는가 하면은 내가 그런 자유 함이 있어야만이 비로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공동체가 세워 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공동체를 통해서 평안을 누리는 거에요, 이게 구원이에요.

 

우리 육신을 완전히 벗어 버리는 그날 재림의 날, 얼굴과 얼굴을 맛대어서 알아서 이제는 상대방이 말을 안 해도 다 알고, 여러분들이 사랑해서 오래 참고 사랑은 믿으며 라고 이야기할 때 내가 믿으면은 어떤 일에도 근본적인 관계의 흔들림이 없어야 된다, 언약의 관계 오늘도 오후에 또 쉼있는 잔치 때 해야 되겠지만은, 왜 그래야 되는가 하면은 그래야 비로서 신뢰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거에요. 10년 지나고 나면은 그 사람 눈빛만 봐도, 어떤 마음인가 알잖아요. 오늘 나는 전부 인스턴트에요, 그래서 평안이 없는 거에요 돈은 많은데,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정말 뭔가 주일날 빠져도 목사님에게 설명 안 해도 믿어 줄 수 있는 목사가 되려고 하는 거에요.

 

11조를 못해도 설명 안 해도 그래서 내가 무슨 이유가 있겠지 라는 거지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 하게 되면은 그런 평안의 공동체가 세워져요. 만약에 우리 교회가 평안하지 못하다면은 여러분들이 아직 어리든지, 세상에 있는 그것 때문에 내가 부인되지 못하든지,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이제까지는 어떻게 믿었든지 뭐 그것은 여러분들이지만, 지금부터 좀 교회다워 지려면은 우리가 모두가 한 하나님의 자녀이고 가족인 줄 알아서 참 우리 속에 일어나는 그 수많은 감정들 거기에서 자유 하게 되어져서 정말 교회가 평안 해지는 교회, 모든 교회는 다 예수님을 머리로 한 하나의 교회, 보편적인 교회가 신앙의 고백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 가운데 점점 나타나는 거에요. 그게 보혈의 능력이에요.

 

우리 한국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하면은 예수님의 이름만 같다 부치면은 전부 기도 응답과 불가능도 가능케 된다고 이건 전부 무당 신앙이에요. 예수의 피가 뭐 여러분 부적입니까, 예수의 이름이 주문이에요, 피와 이름이라는 말 자체의 바울이 왜 그 말을 썼는가를 모르는 정말 어린애 같은 신앙이거든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내가 이렇게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하게 해요. 그래서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죄에서 자유를 이 죄는 뭐냐 하면은 내 중심 나만 아는 여기에서 자유 하게 된다는 거에요. 이런 사람은 누구도 불행하게 할 수 없어요. 이런 성숙이 있으면은 그 교회는 참 같은 말을 해요.

 

◈봉헌 기도◈

 

어릴수록 우리 아버지는 재벌이었으면 하는 마음과 같이 신앙이 어릴수록 재벌 하나님을 기대하는데 오늘도 우리의 신앙이 성숙 되어져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한날을 살아갈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그 분이 나를 창조하신 분이고, 구원 하신 분인 줄 내 자신이 부인될 때 믿어져서 과도히 아껴도 남는 것이 없고, 흩어 나눌지라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물질에 자유케 된 것에 너무나 감사해서 십의 일은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구분하여 주님 앞에 드린 손길들 이 드리는 손길들이 비록 나의 집은 가난한 집이지만 교회를 통해서 부유함을 맛봄으로 말미암아, 부자 욕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교회와 신앙 생활이 되도록 우리 모두에게 자유 주시고, 우리 당회에게 재정에 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병석에 있는 자들에게 병에 자유 함을 얻을 수 있도록 영생의 하나님이 보여 지게 하여 주시고, 가난한 자나 인생의 문제가 있는 자에게 그 문제를 해결하면은 더 큰 산이 있는 것을 알아서 문제가 문제 되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믿어 짐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얽어 매는 많은 것에서 자유 하게 되어져서 내일 때문에 오늘 불행한 삶을 사는 어리석은 자가 없도록 오늘도 이 예물에 제도를 종교적인 예전으로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흑인 백인 좌파 우파 갈갈이 찢겨서 공멸해 가는 세상 속에 흑인이든 백인이든 좌파든 우파든 다 하나님이 만드신 한 가족임을 알도록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하는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 어떠한 완악한 자도 한 명도 멸망 당하지 않고, 구원받도록 지금도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 같이,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그저 나에게 좋은 말 하면은 좋은 사람으로 보여 지고, 내편 만들고 싶은 인간의 욕심을 제어하고,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서 연약한 부모라도 가장 못난 자식, 가장 악한 자식 그게 눈에 밟혀서 눈감지 못하는 그 부모보다도 더한 사랑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 그러한 삶을 살도록 거룩한 홀리카톨릭을 선물로 주신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조그마한 내 지식 사회적인 통념 그 모든 것을 진리의 말씀 십자가 앞에서 내려놓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그 자유케 된 자들로 통하여 죽어서 가야 할 재림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평안을 맛보며 살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주님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